(1864년 11월 30일 ~ 1921년 10월 2일): 호 위암(韋庵), 숭양산인(崇陽山人). 경상북도 상주 출생으로 황성신문 사장이자 주필이었던 장지연은 1905년 11월 17일 을사조약(乙巳條約)이 강제로 체결되자 『황성신문』 1905년 11월 20일자에 「시일야 방성대곡(是日也放聲大哭)」['이 날에야 목 놓아 통곡하노라'] 이라는 논설을 게재해 서 전국에 배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