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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김효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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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1월 <[노랑] 믿음을 말하다>

김효남

청교도 신앙을 흠모하고 역사적 개혁신학을 가장 성경적이라고 생각하는 장로교회 목사로서, 계약신학대학원대학교에서 역사신학 조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으며, 이제 막 태동된 은가람교회(강동구 성내3동)를 섬기고 있다. 사도 시대 이후의 보편교회와 역사적 개혁교회의 정신을 잇고, 바른 믿음(Saving Faith), 바른 신자(True Believer), 바른 교회(Biblical Church)가 이 시대에 세워지도록 돕는 것을 하나님께서 주신 일생의 소명으로 삼고 있다. 아내 이유미와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인 네 자녀 형균, 주은, 민균, 아은과 함께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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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말

<[검정] 믿음을 말하다> - 2020년 11월  더보기

프롤로그 : 기독교와 믿음 누가 뭐래도 기독교는 믿음의 종교입니다. 사람들은 기독교에 대한 정의를 다양하게 내리지만, 기독교가 믿음의 종교라는 말은 기독교의 특성을 잘 설명해 주는 문구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사람은 기독교를 종교 가운데 하나로 여기는 것이 불편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기독교가 믿음의 종교라는 말은 실제로 기독교를 다른 종교와 선명하게 구별해 줍니다. 물론 믿음이 기독교의 전유물은 아닙니다. 사실 종교라는 말 자체가 어느 정도 믿음을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만약 어떤 종교가 눈에 보이는 사실을 분석한 것에 불과하다면 그것은 종교가 아니라 과학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종교와 믿음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약 누군가 기독교를 다른 종교와 구분 짓는 요소를 뽑으라고 한다면, 저는 ‘믿음’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 이유는 기독교의 믿음과 다른 종교에서 말하는 믿음은 본질상 전혀 다르기 때문입니다. 먼저 다른 종교에서 말하는 믿음이란 결국 그 종교가 가르치는 교리를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래야 그 종교의 신자가 되고, 그 종교의 가르침을 따를 수 있습니다. 결국 그들이 요구하는 믿음은 신자로부터 어떤 종교적인 행위를 끌어내려는 수단인 셈입니다. 그리고 구원은 믿음에 따른 행위로 성취됩니다. 예를 들면, 불교는 자신들이 내세우는 교리를 믿고, 그에 따라 수련을 하여 성불하는 것을 구원으로 표현합니다. 이 때 불교의 교리 체계에 대한 믿음 자체만으로 성불에 이르는 것이 아니라 이 믿음을 가지고 수행을 하여 이르게 됩니다. 고로 믿음은 행위를 끌어내는 동기가 되며, 행위를 지속하여 구원에 이르게 하는 도구가 됩니다. 그러므로 불교는 구원을 얻지 못합니다. 믿음이 일으키는 행위로 구원을 얻습니다. 결국 불교에서 믿음은 구원의 수단이 아니라 구원의 수단인 행위를 끌어내려는 방편입니다. 하지만 기독교의 믿음은 이와 다릅니다. 기독교의 믿음은 행위를 끌어내는 수단이 아니라 구원 자체를 주는 수단입니다. 그리고 행위는 구원의 원인이 아니라 결과로서 믿음을 통해서 일어납니다. 여기서 우리는 믿음이 구원과 행위에 직접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결국 다른 종교에서 믿음이란 구원의 원인이 되는 행위를 끌어내는 수단으로서 구원 자체와 직접 관련되어 있지는 않지만, 기독교에서 믿음이란 구원 자체이며 구원의 열매를 산출하는 직접적인 수단입니다. 기독교의 믿음과 다른 종교의 믿음 사이에 있는 차이점은 이것만이 아닙니다. 다른 종교에서 믿음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어떤 것을 믿을 때 믿음이 형성되는 일반적인 과정에서 생겨나는 자연적이고 본성적인 믿음입니다. 바꿔 말하면, 경험과 추론과 유추의 과정을 통해서 믿음에 이르게 됩니다. 제가 묻겠습니다. 지금 여러분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정말로 여러분의 친아버지, 어머니라고 믿으시나요? 어떻게 그렇게 믿을 수 있나요? 태어나서 본 기억도 없고, 아이가 바뀔 수도 있는데 말입니다. 그렇다고 모두 유전자 검사를 해본 것도 아닐 텐데 여러분은 찰떡같이 그분들이 여러분의 부모라는 사실을 믿습니다. 왜 그럴까요? 일단 어릴 적부터 그렇다고 배웠습니다. 하지만 단순히 어릴 적에 그분들이 여러분의 아버지, 어머니라고 배웠기 때문에 믿는다면 세월이 흘러 의심이 일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외모가 아버지와 비슷하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생김새가 비슷합니다. 성격도 비슷합니다. 나를 지극히 사랑해 주십니다. 성품도 비슷한데 더 이상 볼 것이 있을까요? 이쯤 되면 우리는 내가 지금 내 부모님의 자녀라고 믿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꼭 유전자 검사를 하지 않아도 믿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내가 가지고 있는 상식에 부합하기 때문입니다. 결국 다른 많은 고등 종교의 믿음이란 인간이 살아가는 이 세상의 모습과 경험을 분석하고, 그것을 설득력 있게 설명할 때 일어나는 자연적 믿음입니다. 반면에 기독교의 믿음은 초자연적인 믿음입니다. 하지만 이 말이 곧 기독교 신앙은 비이성적이고 다른 종교의 자연적인 믿음은 논리적이라고 경험에 바탕을 둔 이성적이며 분석적인 믿음이라는 의미는 결코 아닙니다. 기독교의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을 믿으며, 우리의 경험으로는 불가능한 것을 믿습니다. 그래서 초자연적입니다. 기독교 이외의 모든 자연 종교는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이성을 무시하는 아주 미신적이고 신비적인 종교와 상당한 체계를 갖추고 있는 고등 종교입니다. 어떤 고등 종교는 종교라기보다는 차라리 철학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더 어울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두 종류의 자연 종교는 서로 상극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 둘에게는 근본적인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인간의 본성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어떤 본성이냐 하면 자신이 한 만큼 대가를 받는다는 것입니다. 바로 인과응보의 사상입니다. 어떤 구원이 있다면 그것도 역시 내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결정이 된다고 여깁니다. 자신의 행위에 따른 보상을 정당하게 여기는 믿음입니다. 이것이 인간의 본성입니다. 하지만 기독교의 믿음은 다릅니다. 교회가 가르치는 것을 믿으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이 믿음이 신자를 움직여 구원에 이를 만한 공덕을 쌓는 것도 아닙니다. 기독교는 일정한 교리 체계를 지식적으로 믿는 것이 아니라 본질적으로 하나님을 믿는 것인데, 하나님은 그분의 사역과 그 사역으로 드러나는 속성을 통해서 우리에게 실체가 됩니다. 그 순간 그 믿음은 수단이 되어 믿는 자에게 구원을 전달해 줍니다. 믿음이 우리에게 무언가를 하도록 만들기 전에 이미 우리의 신분과 본성이 변화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기독교의 믿음은 본질적으로 구원을 얻기 위한 어떤 행위를 끌어내는 수단이 아닙니다. 오히려 믿음으로 말미암는 구원을 먼저 얻고 행위는 구원의 결과로 주어집니다. 결국 믿음은 그 자체로 어떤 신분의 변화를 가져오는 원인이 됩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믿음은 한 사람이 질적으로 변화된 결과로 드러납니다. 이러한 믿음의 역할을 잘 설명하는 한 예가 바로 그리스도와의 연합이라는 진리입니다. 믿음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연합시킵니다. 또한 믿음은 하나님이 우리를 의롭다고 선언하실 때 사용하는 수단입니다. 하지만 믿음은 여기에 멈추지 않습니다. 우리를 그리스도와 연합시키고, 우리를 의롭게 한 믿음은 자신의 임무를 마치고 장렬하게 최후를 맞이하는 것이 아니라 신자 안에 여전히 남아서 새로운 임무를 수행합니다. 구원받은 자로서, 연합된 자로서, 의롭게 된 자로서 우리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실제로 거룩한 삶을 살게 됩니다. 이때 믿음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며, 하나님이 주신 약속이 무엇인지 보여줍니다. 그리고 신자는 이를 통해 세상을 거슬러 나갑니다. 이것이 기독교의 믿음입니다. 신자를 그리스도와 연합시켜 본성을 바꾸는 것도 믿음이요, 변화된 본성을 겉으로 드러나게 하는 것도 믿음입니다. 그렇다면 변화된 본성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믿음이 있어야 선한 행위로 나타나게 될까요? 그것은 바로 신자의 외부를 둘러싸고 있는 이 세상이 마귀가 권세를 잡은 죄악 된 곳이며, 또 신자는 내적으로 여전히 존재하는 죄와 거듭난 본성이 싸우는 전쟁터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새로운 본성의 눈을 가려 육신의 눈에 보이는 세상으로 끌고 가려는 오염된 죄의 세력과 거듭난 본성의 싸움인데, 이때 거듭난 본성에 싸울 힘을 공급하는 무기는 믿음입니다. 믿음은 죄악 된 세상의 허영을 꿰뚫고 하나님과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나라, 곧 지금은 보이지 않으나 영원히 존재하는 나라의 실체를 바라보게 합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신자의 일생과 함께합니다. 결국 신자로 살아가는 것 자체가 믿음과 함께 하는 구원의 여정입니다. 이처럼 기독교는 믿음의 종교입니다. 이제부터 우리는 이 믿음을 본격적으로 살펴보려고 합니다. 그 첫걸음으로 우리가 흔히 가지고 있는 믿음에 대한 오해를 살펴보겠습니다. 왜냐하면 새 술을 담기 전에 우리는 먼저 헌 부대를 버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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