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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규수1807(순조7)~1877(고종14). 19세기 역사적 격변기의 한가운데서 활동한 실학자이자 개화사상의 선구자이다. 본관은 반남(潘南), 자는 환경(桓卿).예동(禮東), 호는 환재(瓛齋).환경(瓛卿), 시호는 문익(文翼)이다. 연암 박지원의 손자로, 어린 시절 외종조 유화(柳?), 척숙 이정리(李正履).이정관(李正觀) 형제에게 수학하였다. 24세 때 효명세자가 요절하자 충격을 받아 18년 동안 은둔생활을 하며 학문에 몰두하였다. 1848년 5월 문과에 급제해 벼슬길에 나선 이후 평안도 관찰사.대제학.우의정 등 고위 관직을 역임하였다. 안동 김씨 세도 정권을 뒤흔든 진주농민항쟁(1862), 최초의 대미 교섭과 무력 충돌을 야기한 제너럴셔먼호 사건(1866), 전면적 대외개방을 초래한 일본과의 강화도 조약 체결(1876) 등 민족사의 향방을 결정지은 중대한 사건들에 깊숙이 관여했다. 1861년과 1872년 두 차례에 걸친 연행을 통해 중국 인사들과 널리 교분을 맺었고, 이를 통해 동아시아를 중심으로 급변하는 세계정세에 대해 식견을 넓혔다. 영.정조시대 실학의 성과를 충실히 계승하여 당대의 문학과 사상에도 상당한 영향을 끼쳤으며, 김윤식.김홍집.유길준 등 개화운동을 주도한 인물들이 그의 문하에서 배출되었다. 저서로 《상고도회문의례(尙古圖會文義例)》 《거가잡복고(居家雜服攷)》 등이 있으며, 문집으로 《환재집》이 있다. ![]() ![]() 대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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