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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현광장현광(張顯光)은 1554년(명종 9)에 출생해서 1637년(인조 15)에 사망한 조선 중기의 학자다. 호는 여헌(旅軒)이고 자는 덕회(德晦)다. 경상북도 인동(仁同)에서 태어난 장현광은 17세기 영남학파를 대표하는 유학자로 이황(李滉)의 문인들 사이에서 확고한 권위를 인정받았다. 과거에 뜻을 두지 않고 학문에 힘썼으며 많은 남인계 학자들을 길러 냈다. 학맥은 퇴계 학파로 분류되지만 이(理)와 기(氣)를 이원적으로 보지 않았다는 점에서 오히려 이이(李珥)의 심성론에 부합하는 바가 많다고 알려져 있으며, 이런 까닭에 그의 학설은 남인 계열의 학자들 중에서 매우 이색적이고 독창적이라고 평가된다. 그의 생애 기간은 왜란 및 호란의 양란기와 맞물려 있는데 한때 의병 활동에 참여하기도 했다. 그는 왜란 이후 15년간 여기저기를 떠돌 수밖에 없었는데, 자호(自號) 여헌(旅軒)이 암시하듯이 모든 인간은 궁극적으로 우주 사이의 나그네이며, 나그네로서 지켜야 할 도리가 있다는 점을 강조하기도 했다.
![]() ![]() 대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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