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사장이 손님상에 낼 북어를 사납게 두드리던 술집에서 누군가가 말했다. 이토록 치열하게 공부하고, 습작하고, 합평하는 것이 소설가로 살고 싶어서인지, 제대로 소설을 쓰는 사람이고 싶어서인지.
무리 중 하나가 망설이지 않고 말했다. 나는 ‘소설가’의 삶을 살고 싶어. 다른 하나가 말했다. 알아주는 사람이 없어도 죽을 때까지 소설을 쓰겠다는 자세가 먼저 같아.
긴 시간이 지난 지금, ‘가’ 의 삶을 간절히 원했던 사람은 소설가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고, 소설 자체에 집중해야 한다고 한 사람은 속세와의 접촉을 최소화하며 쓰는 일에 매진하고 있다.
그때 두 가지 다 괜찮겠다고 생각했던 나는 신이 주신 부실한 재능과 게으름의 응원으로 ‘가’의 삶도 문학에 천착하는 삶도 제대로 살고 있지 못하다. 지나간 얘기를 새삼 들추는 것은 변명이 필요해서다. 끈기와 노력의 부족을 시인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도, 새 인물을 가공하는 작업을 아주 놓을 수는 없는 터, 오래 갇혔던 파일 속 존재들을 세상 밖으로 꺼내 놓기로 했다. 이런 일은 매번 부끄럽지만, 내 글이 누군가의 마음에 작은 울림이나 위로를 줄 수 있었으면 하고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