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접하게 된 건 2013년 일본 국립히젠정신의료센터에 근무하던 때였다. 매주 금요일 아침 8시부터 시작되는 독서회에서, 아동 정신과의를 지망하던 코다마 쇼오코 선생이 이 책을 소개한 날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책 소개가 끝난 뒤 토론 시간에 참석한 의사들은 서로 한마디도 주고받지 못한 채 모두 굳은 표정으로 조용히 해산했다. 그 날 이후 이 책을 한국어로 번역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유사 이래 인류는 문명의 진보를 이루어내면서 이제는 개인이 우주여행을 꿈꾸는 시대를 맞이했다. 그러나 정작 우리들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특히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나서 신체적, 정신적으로 성인이 될 때까지 어떻게 대해져야하는지 또 어떻게 대해져서는 안 되는지 관해서는 여전히 답보상태에 있다.
이 책은 단순히 아동학대와 정신질환과의 관계나 아동학대가 불러일으키는 뇌의 형태학적 변화라는 연구를 보고하는 서적만은 아니다. 이 책이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는 아동학대가 한 인간에게 미치는 정신적, 뇌기질적인 영향이라는 가슴 아프고 슬픈 진실 앞에서 우리자신이 누구인지 알아가기를 호소하고 있다. 이것은 마치 암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몸에 좋은 음식과 생활습관을 알게 된 것과 같이 아동학대가 남긴 상처들에 대한 연구를 통해서 우리는 양육과정에서 아이들에게 제공되어서는 안 될 것들을 알게 되었다. 나는 20년 이상을 일본에서 심리치료가로서 또 정신과의사로서 수많은 아동학대 피해자를 치료해 왔다.
내 클리닉의 초진 환자용 예진표에는 피아동학대력에 대한 항목이 있다. 실제로 클리닉을 찾는 성인환자의 대다수가 지금도 학대받고 상처받았던 어린 시절의 기억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 또 아동학대의 상처는 대물림되어 학대받은 아이가 성인이 된 후 자신의 아이들을 학대하고 있었다. 나는 ‘아동학대의 악순환’이라는 고리를 끊으려고 몸부림치는 환자들에게 삶의 증인이 되고자 노력하고 있다. 더불어 아동학대가 개인의 문제를 넘어서 사회적 문제로써 인식되고 국가적 차원에서 올바른 접근이 이루어지도록 교육하는데 보탬이 되고자 한다. 이 책이 전문가 뿐 만이 아니라 아동과 관련된 자리에 있는 모든 분들에게 소개되어 읽혀지기를 바란다.
이 책이 번역 출판되기까지 도와주신 원광대 한의대 한방신경정신과 강형원 교수님, 한국 M&L 심리치료연구원 천병태 대표님, 고경숙 선생님, 고인성 선생님, 이상원 선생님 그리고 저자와의 교섭을 도와준히젠 정신의료센터 의국비서 카토 가즈미씨와 이 책이 출간되기까지 많은 노력을 기울여주신 군자출판사 장주연 사장님께 감사드립니다.
2016년 5월
고대 가야인들이 이름을 지었다는 이토시마시의
가야산이 보이는 클리닉 진찰실에서
유수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