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3 시절, 입시의 중압감으로 공부에 회의가 생기면서 인생이 무의미하다는 생각에 깊이 빠져든다. 재수 끝에 고려대학교 철학과에 들어가지만 이미 시작된 삶에 대한 허무감에서 쉽게 벗어나지는 못했다. 2학년을 마치고 간 군에서 어떤 여인을 알게 되어 제대하고 난 다음해 아무 대책 없이 그녀와 결혼한다. 이 세상 그 무엇에도 의미와 가치를 둘 곳이 없었던 시절, 그녀와의 해후는 하나의 구원이었다.
졸업 후 1년 뒤 고려대학교 대학원 철학과에 입학하나 5월 광주민중항쟁이 터지면서 대학이 휴교하고 그런 와중에 스스로 학교를 중퇴한다. 그 전에 데모대에 합류해 시청 앞에서 시위를 벌이다 최루가스에 질식할 뻔한 체험을 하고는 권력을 쥐어야겠다는 무모한 생각을 한다. 철학은 너무도 무기력하고 무의미했다. 고시 공부에 뛰어들게 한 건 그런 현실에 대한 분노였다. 하지만 그건 처음부터 자신의 능력을 생각하고 내린 결정이 아니어서 결국 3년 만에 포기하고 만다.
그 후 오랜 방황으로 모든 것에 좌절한 30대 중반의 후줄근한 나이에, 우연히 숭실대학교 철학과 조요한 선생님의 《예술철학》이란 책을 접한다. 이런 공부를 하면 재미있겠다는, 그 나이에 참으로 철없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앞뒤 분간 못하고 홍익대학교 대학원 미학과에 진학하는데, 놀랍게도 그곳이 나에게는 하나의 ‘오아시스’였다. 거기서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조요한 선생님을 지도 교수로 모실 수 있었던 것은 나의 빈한한 삶에서 가장 뜻깊은 행운이었다. 그분을 통해 ‘존경심’이란 걸 평생 처음 가슴 깊이 느낄 수 있었다.
여러 대학에서 철학, 미학, 국악 등의 강의를 아주 헐값에 했다.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연구교수로 일했다. 저서로는 《중국 도가의 음악사상》, 《장자의 예술정신》, 《한국의 음악사상》, 《우리 음악의 멋 풍류도》, 《한국 고대 음악사상》 등이 있고, 번역서로는 《성무애락론》, 《혜강집》, 《예기·악기》 등이 있다. 《한국의 음악사상》과 《한국 고대 음악사상》이 2001년과 2007년 각각 문화관광부 우수학술도서로 선정되었다.
여기서 '악기'를 택한 이유는 두 가지다. 먼저 새로운 악기의 소개나 수용은 음악양식의 변화를 일으키는 중요한 요인이 되는데, 이는 새로운 악기를 사용한 연주 활동이 이전까지의 음악과는 다른 음악 문화를 만들어내는 계기가 되기때문이다. 둘째, 악기는 단지 음악을 위한 하나의 물적 수단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음악 문화의 '창조성'과 '주체성'이 융합되어 나타난 '독특한 심미 의식'을 구체적으로 담보하고 있는 매우 상징적인 매체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