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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펠릭스 아브트 (Felix Abt)

국적:유럽 > 중유럽 > 스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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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1월 <평양자본주의>

펠릭스 아브트(Felix Abt)

스위스 사업가인 펠릭스 아브트는 2002년부터 2009년까지 7년 간 평양에서, 북한·스위스 합작회사인 ‘평스 제약 합영회사’ 사장으로 근무했다. 북한에 있는 동안, ‘유럽 비즈니스 협회’를 창설하여 초대 회장을 맡았고, ‘평양 비즈니스 스쿨’ 개교에 참여하여 초대 교장 임무를 수행했다. 펠릭스 아브트는 스위스 전력회사 ABB 그룹의 지역책임자로 아프리카, 유럽, 아시아 여러 국가에서 근무하기도 했다. 그는 현재 베트남에 거주하면서 다양한 북한 사업에 관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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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말

<평양자본주의> - 2015년 11월  더보기

북한에서도 개방이 시작되고 있는가? 2011년 12월 북한의 오랜 지도자 김정일이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그가 사망하기 2년 전부터 이미 서방 정보기관에서는 이 ‘위대한 지도자’의 건강이 악화되고 있다고 전망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갑작스러운 사망 소식은 한국 연구자들을 충격에 빠뜨렸다. 김정일의 막내 아들인 김정은은 그의 아버지가 사망한 직후 권력을 장악했다. 그리고, 김정일은 북한의 유훈통치라는 독특한 전통에 따라 조선노동당의 “영원한 총비서”로 추대되었다. 타임지(Time magazine)는 2012년 2월 27일 발행본의 표지에 “꼬마 김(Lil’ Kim)”이라는 제목과 함께 김정은 사진을 게재하면서, 전 세계 5개 밖에 남지 않은 사회주의 국가 중 하나인 북한의 개혁을 기대했다. 북한은 2000년대 중반부터 국가중심주의에서 서서히 벗어나고 있으며, 김정은은 군부와 측근에 대한 통제를 확고히 하면서, ‘개방(Glasnost)’에 관심이 있는 인사들을 고위직에 배치시키고 있다. 김정은은 대중들 앞에서, “간부들은 창의적이고 기업가적인 태도로 일해야만 한다… 그리고, 낡은 이념적 관점과 뒤떨어진 작업방식들을 철저히 척결해야 된다.”고 선언했다. 예일대학에서 중국역사를 전공한 존 델러리(John Delury) 연세대학교 국제대학원 교수는 김정은의 이 연설을 등소평이 중국 개혁의 시작을 선언한 1978년 12월 발언과 비교하였다. 등소평은 이 때 당원들에게 “새로운 방식으로 생각하고, 탐구하며, 새로운 아이디어를 창출해 내는 개척자들이 될 것”을 요구했다. 나는 새로운 비즈니스 문화를 북한에 주입함으로써, 북한 정권이 국제사회에 조금씩 나올 것이라는 희망을 품고 7년 동안 북한에서 근무했다. 하지만, 나의 이러한 로맨틱한 바램은 단지 나의 삶을 고달프게 만들 뿐이었다. 일부 사람들은 나를 세계에서 가장 고립되고 군사화된 북한 정부를 위해서 일하는 ‘쓸모있는 멍청이’라고 불렀다. 또한 그들은 나를 맹목적인 ‘이상주의자’ 또는 북한 주민들의 희생의 댓가로 자기 주머니를 채우는 ‘탐욕적인 자본가’라고 비난했 다. 그러나, 나는 북한의 수도 평양에서 7년 간 근무하면서 국제사회에 널리 알려진 굶주림, 핵 폭탄 그 너머에 존재하는 북한 내 보통 사람들의 일상적인 이야기 그리고, 그들의 희망과 꿈에 대한 엄청난 통찰을 가지게 되었다. 서양인들이 상상하기 좀 어렵겠지만, 나는 세계 마지막 남은 은둔국가에서 투자 담당자로 근무했다.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나는 무기나 마약을 취급하지 않았다. 대신에 북한에서 생산되는 의류, 주류, 금속, 천연자원들을 구입하고, 기계류, 염색자재, 식자재, 산업자재, 의약품과 같은 물품을 북한에 판매했다. 그리고, 서양기업들의 북한 내 대표 사무소 및 현지 회사 설립과 운영에 관여했으며, 투자자들이 북한에서 약품 생산, 소프트웨어 개발, 국수 생산, 귀금속 채굴, ‘백두산’ 생수 확보를 위해 조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조언을 제공했다. 나의 사업활동을 통해 북한 내 사업관행이 많이 개선되었다. 북한 광부들의 안전기준 강화가 한 가지 예가 될 수 있다. 외국산 설비들을 광산에 설치하거나 수리하기 위해 파견된 외국 기술자들이 안전하지 않은 광산에 들어가는 것을 거부했고, 이에 따라 북한은 해결책을 모색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평양에서 최초로 문을 연 ‘비즈니스 스쿨’의 공동설립자이자 관리자로 일하면서, 북한 고위 간부들의 정치 및 사업 마인드를 엿볼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그들 중 상당수는 완전한 사회주의 경제에 대한 신화를 포기했으며, 북한 경제 성장과 혁신을 촉진시킬 수 있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북한 너머의 세계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러한 마인드 변화는 1990년대 북한 경제의 위기와 굶주림에서 기인했다. 이 시기 북한 김정일 정권은 북한 경제를 지탱해 줄 소비에트 진영의 도움을 더 이상 받을 수가 없었다. 필자가 공동으로 북한에 설립한 ‘비즈니스 스쿨’은, 세계에서 가장 중앙계획적인 북한경제가 세계 자유경제를 향해 몇 발자국을 띠게 하는 데 기여했다. 나는 평양 내에 ‘유럽 비즈니스 협회’가 출범하는 데 도움을 주었고, 초대 회장을 맡았다. 이 협회는 북한 내 최초의 외국인 상공회의소였다. 협회 회장이 되면서, 나는 유럽과 전 세계 국가의 투자자들을 위한 로비스트 역할을 하게 되었다. 나의 임무 중 하나는, 북한 당국이 외국기업을 위해 투자환경을 개선하도록 캠페인을 전개하는 것이었다. 투자 환경 개선에는, 북한 당국의 복잡한 행정절차를 거치지 않는 보다 간편한 노동자 채용, 세금 감면, 지역 소비자와 공급자들에게 직접 접근할 수 있는 기회 등이 포함되었다. 한 마디로 말해, 우리는 북한당국이 법에 의한 지배 즉, 법에 의한 기업 및 주민 보호, 시장의 개방, 내국인과 외국인의 동등한 조건 부여를받아들이도록 압력을 가했다. 이것은 하나의 도전이자 모험이었지만, 이러한 노력을 통해 북한 정부의 실질적인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었다. 일부 독자들은 이 책을 읽으면서, 북한 당국과 나의 사업 파트너들이 북한의 폐쇄적 사상에 세뇌 당하지 않은 것을 알고 무척 놀랄지도 모른다. 그들의 행동은 정상적이었고 또한 합리적이었다. 그들은 나와 사업상 만나면서 공평하고 즐거운 모습을 보여주었으며, 나는 이를 좋은 기억으로 간직할 것이다. 나는 다른 외국인 기업가들로부터 북한에서 곤혹스러운 경험을 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북한에 거주하는 외국인 기업가로서 겪게 되는 혼란스러운 부분에 대해 뒤에서 설명하고자 한다. 나와 함께 북한에서 일했던 북한 및 외국인 동료들이 피해를 입지 않도록 하기 위해 그들의 실제 이름과 세부 미팅 내용을 일부 수정할 것이며, 그들의 명성을 보호하기 위해서 몇 가지 사실들은 공개하지 않을 것이다. 2000년대 중반 북한에 대한 국제정치적 긴장이 고조되면서, 모든 대북사업이 잘못된 시기에, 잘못된 장소에서, 잘못된 일을 하는 것처럼 비쳐지기도 했다. 이러한 분위기는 2002년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북한을 “악의 축” 국가 중 하나로 지명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2008년, 한국 정부는 모든 대북지원을 중단했고, 이후 남북관계는 더욱 악화되었다. 이에 대한 대응으로, 북한 김정일 정권은 2006년과 2009년 핵 실험을 단행했다. 그리고 2010년 한국의 전함인 천안함이 침몰하면서 64명의 해군병사들이 사망했다. 북한은 이 천안함 침몰이 북한의 어뢰공격에 의한 것이라는 주장에 대해서 부인하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남북 양쪽은 상대방에 대한 강경입장을 고수해 오고 있다. 천안함 공격의 배후에 북한이 있다면, 북한은 분명 용서받을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한국 내에도 이견이 존재한다. 2012년, 저명한 한국 지진학자와 이스라엘 지질학자는, 지진파와 음파 분석에 기초해, 한국 기뢰에 의한 천안함의 폭파 가능성을 제기한 바 있다. (역자 주) 천안함 침몰사건과 관련하여, 한국, 호주, 미국, 스웨덴, 영국 등 5개국 전문가 24명으로 구성된 합동조사단은 2010년 5월 20일, 천안함이 북한의 어뢰공격으로 침몰했다고 발표했다. 이를 근거로 U.N. 안전보장이사회는 (북한의) “공격을 규탄한다.”는 의장 성명을 채택했다. 북한 지역 주민들 그리고, 관료들과의 만남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현재 북한정부가 궁지에 몰려 있으며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것이다. 북한 정권은 유엔 제재와 국제적 비난 압력에 대응하고 있다. 북한에서 합법적으로 이루어지는 비즈니스들이 북한을 빈곤의 늪에서 건져내는데 도움을 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강경한 군 지휘관들에 의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정치적 도전이라는 측면에서, 북한만큼 나에게 시련을 준 국가도 없다. 사실, 나는 3개 대륙 9개 국가에 상주하면서 사업을 했고, 아프리카, 아시아, 구소련 그리고 구소련의 사회주의 동맹국가의 수 십개 도시를 사업 또는 레저 목적으로 여행한 바 있다. 이러한 여행은 나에게 어떻게 사람들이 다양한 문화 양식과 정치 체계를 형성하는지를 보여주었고, 이를 통해 인간의 삶에 대한 통찰을 얻게 되었다. 북한 사례는 국제적 고립이 주민들의 태도 형성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보여주는 한 가지 사례이다. 한편, 이 책은 국제정치가 어떻게 북한 주민들을 안심시키지 못하고 있는 가를 보여줄 것이다. 북한이 세계적으로 고립되어 있긴 하지만, 흔히 생각하는 지저분한 가난의 중심지와는 거리가 멀다. 인력자원 컨설팅 회사인 ECA 인터내셔널이 매년 발표하는 조사결과에서 평양은 수년 간 아프가니스탄의 카불, 파키스탄의 카라치와 함께 ‘거주 외국인 사업가’들에게 가장 비우호적인 도시들 중 하나로 선정되었다. 나는 이 결과가 합리적이지 않다고 생각한다. 평양이 런던이나 뉴욕처럼 화려하지는 않지만, 당신이 외국인이라면 살기에 괜찮은 도시이다. 외국인들은 범죄와 테러, 자녀의 안전에 대해 안심해도 된다. 비록 전기와 수돗물 공급이 부족하긴 하지만, 평양은 깨끗하고 안전하다. 사실, 전기와 수돗물의 부족한 공급은 가난한 국가의 대도시들, 예를 들어 북경, 호치민시, 자카르타 등 신흥 산업지역 어디에서나 경험하는 것이다. 북한은 역사적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었으며, 현재 정치적으로 고립되어 있다. 이러한 사정을 감안하여, 북한 사람들의 관점에서 북한의 고립주의와 사회주의적 관료주의를 바라볼 필요가 있다. 북한은 동서양의 강대국들에 의해 둘러싸여 있고,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제재를 받고 있는 국가다. 이러한 국제적 제재는 사업의 기회를 좌절시키고 있으며, 북한의 경제적 발전 전망을 더욱 어둡게 하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내가 경험한 한 가지 사례를 소개하고자 한다. 나는 평양 상하수도 시설을 복구하는 수백만 달러짜리 프로젝트와 관련하여, 큰 손실을 입은 적이 있다. 어떤 정치체제를 채택하고 있든지 간에, 세계 모든 국가의 중심도시는 주민들의 건강을 보호하기 위해서 하수도 시설을 구축하고 있어야 한다. 이 시설을 통해, 많은 개발도상 국가들이 겪고 있는 콜레라와 같은 수인성 질병을 예방할 수 있다. 평양에 상하수도 체계를 구축하는 이 프로젝트는, 쿠웨이트 정부가 운영하는 개발프로젝트 금융기구인 ‘아랍경제발전을 위한 쿠웨이트 펀드’가 자금을 제공하기로 되어 있었다. 그런데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한 가지 문제가 발생했다. 그것은 프로젝트 실행에 필요한 일부 소프트웨어가 미국의 대북한 제재항목에 포함되어 있었던 것이다. 미국의 수출입제한 규정에 의해, 다국적 기업이 미국의 대북제재를 어겨가면서 북한과 사업을 진행하는 경우, 장래에 여러 가지 법률적 제한을 겪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심한 경우 미국에서 사업할 수 있는 기회마저 잃을 수도 있었다. 결국, 다국적 기업들이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기를 주저했고, 쿠웨이트 정부는 미국의 분노에 두려움을 느낄 필요가 거의 없는 아시아의 소규모 기업들과 계약을 체결했다. 북한 제재와 관련하여 내가 경험한 또 다른 사례를 소개하고자 한다. 2008년 유엔의 대북제재로, 내가 혼신의 노력으로 일구어 온 제약회사 ‘평스’가 생존의 위기에 직면했다. 2000년대 중반 북한 핵실험에 대한 응징으로 가해진 유엔 대북 제재가 위력을 떨치던 시기에, 나는 제약회사 ‘평스’의 관리책임자였다. 유엔 제재로 인해, 약품 실험에 필요한 특정 화학물질을 더 이상 수입할 수가 없었다. 이 약품 실험은 농촌마을 주민들의 보건을 향상시키기 위해서 계획된 것이었다. 내가 소개한 일부 사례를 통해 알 수 있듯이, 국제사회의 대북제재로 피해를 입고 있는 것은 국제사회가 타깃으로 삼고 있는 북한 정부가 아니라, 의료지원 등의 원조를 필요로 하는 일반 주민들이다. 북한 헌법상 모든 의료서비스는 무상이다. 하지만, 현실에서 북한 주민들은 외국 원조지원국 그리고, 비정부기구(NGO)로부터 비정기적으로 제공되는 약품에 의존하고 있다. 나는 대북제재에 대처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이 과정에서 나를 제일 힘들게 한 것은 북한을 블랙리스트에 올려놓은 국가들이 아니라, 정확한 정보를 가지고 있지 않은 투자자들, 고용주들, 나를 중계인으로 임명한 회사 소유자들, 고객들, 원료 공급자들 그리고, 언론인들이었다. 이들 대부분은 고정관념에 빠져 북한 사회를 이해하는 데 별다른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 그들에게 북한은 변방의 중요치 않은 국가로 인식되었다. 그들은 오직 중국 다음으로 떠오를 신흥시장에 대한 투자에만 관심을 보일 뿐이었으며, 북한 사람들에 대해서는 스탈린식 독재국가의 ‘일하는 개미’정도로 밖에 여기지 않았다. 그들은 북한이 작동하는 방식에 대한 나의 비즈니스 탐구 및 설명에 주목하지 않았고, 북한주민들의 자구능력에 대하여 평가절하했다. 사업적인 이야기를 잠시 접어두고, 북한에서의 우리 가족이야기를 했으면 한다. 당시 베트남에서 살고 있던 나의 아내와 어린 딸은 종종 평양을 방문했다. 전기와 수돗물이 항상 부족했고, 특히 여름철에는 유제품을 구하기 어려웠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무척 즐거운 생활을 했다. 참고로, 북한에서는 냉장시설이 열악해서, 여름철에는 유제품이 거의 공급되지 않았다. 북한에서 살면서, 업무에 쫓겨 가족과 충분한 시간을 보내지 못한 것이 너무나 후회된다. 부족하지만, 이 책을 나의 아내와 딸에게 바치는 것으로 미안한 마음을 대신하고 싶다. 북한에서 나의 아내와 어린 딸은 새로운 경험을 하기도 했다. 잠시 동안이긴 하지만, 나의 (베트남 출신) 아내는 스위스 정부의 후원으로, 북한 ‘경공업성’에 자문을 제공하는 역할을 했다. 그녀는 작은 가죽공장을 건설하는 프로젝트를 주도했는데, 이 공장은 가공되지 않은 채 남겨져 있던 200만 마리의 염소 가죽을 이용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이 프로젝트는 실현되지 못했다. 막 걸음마를 배우기 시작한 나의 어린 딸은 하루에 3시간씩 ‘조선국제학교’내에 있는 국제유치원을 다녔다. 국제유치원에서 외국아이들은 북한 선생님들로부터 김일성이 모든 북한 아이들의 상징적인 아버지라는 것을 배우고 무척 놀라워했다. 북한 생활을 통해 내가 깨달은 것은 북한 사람들이 ‘친애하는 지도자’의 독재에 무조건 따르는 로봇이 아니라 우리와 같은 인간이라는 것이다. 그들도 전 세계 다른 국가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슬픔과 행복을 경험하며, 희망과 열정을 품고 있다. 나는 이 책을 통해, 나의 잊지 못할 북한 경험들을 독자들과 나누기를 원한다. 일부 독자들은 나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북한이라는 하나의 이상하고 고립된 세계에 빠져드는 즐거움을 맛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학문적 탐구자들은, 접근하기 어려운 북한 내부의 작동방식에 대한 정보를 얻게 될 것이다. 당신이 이 책을 선택한 이유가 무엇이든지 간에, 나는 이 책을 통해 당신이 이전에 가지고 있던 북한에 대한 인식이 조금 변화되기를 희망한다. 사실, 은둔왕국에서 생활한다는 것은 힘든 일이다. 그렇다고 해서, 흔히 상상하는 것처럼 기이하지는 않다. 많은 사람들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은 북한이라는 국가는 호기심 많은 외국인들, 예를 들어 외국인 사업가, 여행자, 영어교사, 평양 스포츠팀 외국인 트레이너들에게 엄청난 기회를 제공해 준다. 마지막으로, 이 “쓸모있는 바보”는 북한에서 편안한 생활을 하였고, 가지고 있는 지식과 기술을 북한 일반 주민들과 매우 행복하게 나누었다. 나는 일종의 문화 통역사로서 북한에 대한 국제사회의 오해를 해소시키고 국제사회와 북한을 연결하는 다리를 건설하기 위해서 노력했다. 나는 값싸고 품질이 우수한 의약품을 이 가난한 국가에 보급할 수 있었던 것 그리고, 북한사람들에게 점차 세계화가 되어가는 시대에 사업하는 방법을 교육시킨 것에 대해서 기쁘게 생각한다. 지금 북한은 젊은 김정은이 권력을 계승했다. 북한이 냉전구조에 고착되어 있는 한, 세계화는 더욱 어려워질 것이다. 등소평이 선택했던 개혁개방의 길로 김정은이 나아갈 것인가? 이 질문과 함께 나의 이야기를 시작하려고 한다. 베트남 나트랑에서,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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