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움은 비겁한 자들이 머무는 장소가 아니다.”라고 일갈했던 안토니오 가모네다, 그는 세대적 범주를 넘어선다는 평가를 받으며 오늘날 스페인 젊은이들에게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치는 시인으로 꼽힌다. 1988년 스페인 국가 시인 상을 수상하고 2006년 레이나 소피아 상과 세르반테스 상을 수상하면서 현대 스페인 시단을 대표하고 있다.
그러나 그의 유년은 불우했다. 1931년 5월 30일 스페인 오비에도에서 태어나자마자 바로 일 년 뒤에 시인이었던 아버지가 세상을 뜬 것. 그 후 병든 어머니와 함께 레온으로 이주한 뒤 줄곧 변두리 빈민층으로 살아온 그는 생계를 책임지느라 열네 살 이후부터 정규 교육을 받지 못했다. 오로지 독학으로 중등교육 과정을 마쳤으며, 1969년까지 24년 동안 은행 직원으로 근무했다.
교육을 받지 못했음에도 그는 의식적인 사람이었다. 동족 간에 총부리를 겨눈 스페인 내전을 몸소 겪고 40년간의 프랑코 독재 체제를 경험하면서 사회에 눈을 떴다. 은행원으로 근무하던 동안 반프랑코 운동의 조직원으로 활동했고, 이 시절의 산 경험을 바탕으로 시를 썼다. 그의 공식적인 첫 시집 《움직이지 않는 반역》은 스페인의 유력 출판사 아도나이스가 수여하는 상을 받고 1960년에 출판되었다.
이 시집으로 명성을 얻은 그는 1969년 레온 도의회 문화사업부를 창설하여 주도적으로 활동했고, 1970년에는 도에서 주관하는 시집 시리즈 발간을 추진하여 지역의 진보적 문화 활동을 진작시켰다. 그러나 8년 뒤, 공적 학력을 증명해 줄 학위가 없다는 사법 판결로 말미암아 공직을 잃는 아픔을 겪는다. 그래도 그는 굽히지 않고 여러 문학잡지 활동에 참여하면서 지역 문화 의식을 고취시켰고, 농민과 노동자 교육을 위한 자유교육학교의 정신 아래 세워진 시에라 팸블리 재단의 대표직을 1979년부터 1991년까지 역임했다.
어린 시절의 빈곤, 아버지의 이른 죽음, 홀어머니의 외로운 삶으로 점철된 개인의 이력을 ‘시’를 통해 거대한 역사의 장과 결합시킨 그는 당대인들과 공감대를 형성하면서도 그만의 독특한 세계를 펼쳐 보인다. 평자들은 그의 시를 설명할 때면 죽음과 고통의 기억을 하나의 지표로 삼아 시적 환상성이 농후한 그의 시를 해석해 낸다.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고통의 시대를 살았던 가모네다의 심미적 지평 안에서 역사는 여전히 전쟁 중이다. 그 전쟁을 직접 겪은 그의 몸은 폭력과 강압의 대상이다. 거기서 살아남기 위해 가모네다는 환상성을 붙잡는다. 그의 몸이 기억하는 과거의 파편과 흔적, 느낌과 환영이 시적 음률을 타고 자유분방하게 흐른다. 그의 시는 어찌 보면 역사의 공격에 대한 개인의 생물학적 응전이라고 할 수 있다. 그에게 시란 몸이 체험하는 심층적·역사적 경험의 내재화이다. 그 응축은 처절하다. 그러나 그만큼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