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춤비평가와 사진작가로 활동 중. (한국춤비평가협회 회원, 서울문화재단 무용 전문평가위원)
서울에서 출생. 서울대학교 지학과를 졸업한 후, 한국외대 대학원 정외과에서 국제관계를 전공하며, 아랍·이스라엘 분쟁에 관심을 갖고 <중공·中共의 대중동.對中東 정책에 관한 연구: 팔레스타인과의 관계를 중심으로>(1985년)로 정치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국내 방방곡곡을 여행했으며, 파리를 위시한 유럽, 보스턴, 뉴욕 등지 미국에서 젊음의 한때를 보냈다. 여러 차례에 걸쳐, 세계 70여개국을 여행했다. 길 위에 있었던 것만도 2-3년은 되리라. 1990년대 초, 우리나라 젊은이 해외배낭여행 붐을 일게 한 여행가 중의 한 사람이며, 기행작가 대신 ‘여행작가’라는 호칭을 처음으로 사용해 퍼뜨렸다.
요르단 후세인화력발전소 건설에 한국회사의 직원으로 참여했을 때는 2년 간, 사막현장에서 근로자들과 함께 기거하며, 매주말 그리스, 로마 및 이슬람 이전의 나바티언 문명 유적지 고고학 답사를 다녔다. 그 기간, 아랍 및 팔레스타인 사람들과 벗하며 분쟁으로 인한 그들의 고통을 알게 되어, 귀국하여 ‘아랍·이스라엘 갈등(Arab-Israeli Conflict)’을 전공하게 되었다.
무역회사, 건설회사 근무 후, ‘월간 카라이프’ 편집부장과 여행사 임원을 거쳐 터키국영항공사 한국 GSA의 CEO를 역임했다. 안양대학교 관광경영학과에서 잠시 강의를 했다. 검도 유단자로 종로구 대한검도회장을 지냈다.
한때 한국 국학과 민속학에 깊이 빠진 이래, 지금도 관심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활발한 자유기고가로 여행, 민속, 공연예술, 영화에 대한 글과 사진을 여러 매체에 수백 회 게재했다. 해외에서 직접 촬영한 비디오 필름으로 TV에서 수십 회 방송하기도 했다. 1994년, 저서 ‘이만주 세계여행 에세이’로 ‘올해의 여행인상’을 수상했다.
인간이 동물과 다른 점, 이승이 저승과 다른 점은 예술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며 예술에 빠진 이래, 필경, 따뜻한 피가 흐르는 몸을 움직이는 춤예술에 심취하게 되어 60무렵에 춤비평을 시작했다. 이어 곧 아시아에서 두 번째로 미국춤비평가협회(DCA)의 정회원이 되었으며 서울국제공연예술제 조사연구위원을 지냈다.
대학원 졸업 후, 실로 수십 년 만에 주위 지인들의 강권으로 ‘윤리경영’을 주창하는 경영학 석·박사 전문대학원인 서울과학종합대학원(aSSIST)에서 ‘한류’와 ‘동반성장’을 연구하고 있다.
보여지는 화려한 경력과는 달리 변화무쌍하고 굴곡진 삶을 살아, 화려함이 구차함으로 바뀔 때는 일일이 밝히기 싫을 정도로 여러 직업을 전전하며 힘들게 살기도 한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다. 따라서 생(生)의 밑바닥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으며, 힘들고 어렵게 사는 이들의 삶을 이해하고 공감한다.
시를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한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3, 4년 전 어느 날, 지하철역 안, 미끄럼문 유리창 위에 씌어 진 시들을 우연히 읽다가, 언어의 유희뿐인 시들에 의문을 가졌다. 그 후, 시를 쓰기 시작해, 이 시집을 내게 되었다.
세 번째 시집이다.
그간 4년 동안 얼마나 헤맨 걸까? 나 자신, 궁금하다.
얼떨결에 시집 제목을 가제로 〈괴물의 초상〉이라 했던 것이 개연성이 있어 정식 제목이 되었다. 이 시집 안에 ‘괴물의 초상’이란 시는 없다.
느지막이 왜 시를 다시 쓰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운명이다.
2022. 구월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