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백석대학교 경찰학부 범죄학전공 주임교수, 유관순연구소수석 연구위원, 대한경비협회경기북부경비원교육원 사무총장
경찰청 실종수사지도팀장(경정으로 퇴직, 20년 7월 경찰근무)
경찰교육원, 수사연수원, 중앙경찰학교 강사
경찰청 182센터장, 장기실종추적팀장
실종자 등 이산가족 5,600명 상봉 등 사건처리
KBS, MBC, SBS, MBN, OBS 등 21년간 매주 생방송 TV 출연, 방송인
03년도 모범공무원수상
10년도 청룡봉사상 수상
12년도 KBS 감동대상 수상
13년도 미국월드레코드아카데미 실종자찾기 세계공식기록등재
13년도 “참나눔 실천인”으로 선발되어 청와대 방문(복지부 추천)
14년도 “올해의 경찰관”으로 선정
함께 아파하면 찾을 수 있습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예레미야 33:3]
고등학교 교복을 입은 여고생들이 쉬는 시간인지 책상과 의자에 동그랗게 모여 앉아 수다를 떨고 있는 동영상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 동영상을 보다보면 왠지 모를 위화감이 듭니다.
무엇일까요? 뭔가 제대로 들어맞지 않는 조각 퍼즐을 보는 듯한 느낌은 과연 무엇일까요?
어긋난 퍼즐 조각 하나. 바로 키도 크고, 가슴도 봉긋한 여고생들 사이에 앉아 있는 한 소녀였습니다. 그 아이만이 유독 젖살도 채 빠지지 않은 통통한 볼을 하고 있고 키도, 머리 크기도 다른 여고생과 달리 매우 작습니다.
실종 아동과 관련한 캠페인 광고 속에 등장하는 김효정 양의 모습입니다. 효정 양은 2004년 가족들이 모르는 곳으로 갑자기 사라졌습니다. 불과 9살의 어린 나이였습니다.
이 광고를 보면서 가슴이 새카맣게 탈 사람들을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다름 아닌 실종아동 가족들, 효정 양의 가족들입니다. 하지만 알고 있는 것과 실제로 겪는 것은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구곡간장의 아픔. 새끼를 잃은 어미 원숭이의 몸을 갈라 보니 온몸에 있는 내장은 모두 다 끊어져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 참담한 고통. 그것이 바로 혈육, 그것도 자식을 잃어버린 부모의 고통일 것입니다.
김효정 양의 아버지는 잃어버린 당시의 체구 그대로 교복을 입은 딸아이의 모습을 보면서 어떤 심정이 들까요? 벌써 고등학생이 되어 예쁜 교복을 입고, 친구들과 한참 수다를 떨고 멋을 부릴 딸아이의 모습을 그리는 아버지의 눈가는 촉촉한 물기로 이미 젖어들었을 것입니다. “죽은 자식은 가슴에 묻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하지만 차마 가슴에도 자식들을 묻지 못하는 사람들이 실종아동의 부모들입니다.
예전에 제가 『실종! 함께 아파하면 찾을 수 있습니다』라는 제목으로 책을 펴낸 적이 있습니다. 제가 13년 동안 실종자 가족들에게 썼던 7만여 통의 편지를 토대로 쓴 책이었습니다. 실종자를 찾는 일을 하면서 가족들이 가장 아파하고 힘들어하는 부분이 무엇인지 일반인들에게 제대로 알리고 싶어서 낸 책입니다.
이 일을 하면서 비로소 저도 사랑하는 혈육과 헤어진 사람들의 마음을 차츰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길을 잃어 가족과 헤어진 아이를 만나면 ‘낯선 곳에 남겨진 이 아이의 심정이 어땠을까?’ 하는 생각부터 하게 됩니다.
저에게 오는 가족 찾기와 관련한 편지라든지 신청서, 메일 한 통도 소홀히 보지 않습니다. 꼼꼼히 살펴보면서 혹여 제가 놓쳤을지도 모르는 행간에 숨은 단서를 찾느라 부심합니다.
제가 직접 운영하는 인터넷 카페에 올라오는 글 역시 모두 정독합니다. 게시판에는 가족을 찾아달라는 부탁의 편지와 찾아줘서 감사하다는 편지가 반반의 비율로 올라와 있습니다. 그 안타깝고 아픈 사연에 공감할 때마다 ‘어떻게든 끝까지 가족을 찾아줘야겠구나!’ 하고 다짐합니다.
이렇게 열심히 실종자 가족들을 찾아주어서 그런지 해외 교포나 다른 기관에 가족 찾기를 의뢰해둔 사람들이나 다른 경찰서에 수사를 의뢰한 분들조차 저를 찾아오곤 합니다.
저는 2007년부터는 KBS 「그 사람이 보고 싶다」, 「사람을 찾습니다」, 「실종 어린이를 찾습니다」라는 프로그램에 고정출연하며 잃어버린 가족과 입양아의 부모 등을 찾아주는 활동도 병행하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2013년에는 국민들에게 감동과 희망을 준 사람에게 수여되는 KBS 감동대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제게 어떤 이는 묻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많은 실종자들을 찾아낼 수 있었습니까?”
제 비결은 단순합니다. 바로 ‘포기하지 않는 것’입니다. 사연을 접하고 수사를 시작한 뒤 시간이 한참이 지나더라도 절대 제게는 수사 종료라는 것이 없습니다. 수사를 계속하는 한, 관심의 끈을 놓지 않는 한, 실종자들을 찾을 가능성은 더욱더 높아진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알기 때문입니다.
“내가 살아있는데 어떻게 포기를 하나요?”라고 되묻던 한 실종자 부모의 말을 들은 후부터 저는 가족을 결국 찾지 못한 접수 건들도 수년이 지나도 끌어안고 갑니다. 생각날 때마다 다시 한 번 서류들을 뒤적이는 것도 잊지 않습니다. 신청인들 한 명 한 명에게는 목숨처럼 중요한 일이라는 것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집념을 갖고 일할수록 업무량은 엄청나게 늘어납니다. 사람인 이상 몸이 고달플 때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그만큼 절실한 가족들의 마음을 알고 있기에, 가족들에게 상봉의 기쁨을 주는 기쁨이 얼마나 큰지 잘 알고 있기에 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이 실종 수사 일을 하면서 제 가족들과 함께하는 물리적 시간 자체는 현저히 줄어들기는 했습니다. 하지만 비례적으로 가족애는 더 진해졌습니다. 예전에는 공기처럼, 물처럼 너무도 당연해서 잘 알지 못했던 가족의 소중함, 가정의 행복을 가슴 저리도록 알게 된 까닭입니다. 이렇게 소중한 제 아내와 아이들처럼 여기며 실종자들을 찾으려고 노력합니다. ‘가족’이라면 절대 포기할 리 없으니까요.
슬픔도 나누면 고통을 덜어줄 수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이 아픔에 동참하고, 혹시 주변에 실종자로 보이는 분은 없나 유심히 살펴봤으면 하는 마음으로 썼던 전작과 달리 이번 책은 실종자 가족들에게 마음의 평온과 희망을 전달하기 위해 제가 평소 가졌던 생각들과 신앙에 대한 이야기들을 정리해 담았습니다. 물론 그동안 겪었던 기적 같은 상봉 스토리는 덤입니다.
제가 생각해도 제법 질긴 열정과 지구력을 가졌다고 자부하지만 오래도록 이 일을 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이 일이 천직임을 깨달았습니다. 누군가의 강요나 독촉도 없었고, 부탁도 없었습니다. 그저 한 명, 두 명 남의 아픔과 함께한다는 생각으로 오다 보니 여기까지 왔습니다.
가끔은 다른 사람의 아픔을 공유하면서 그것이 나의 ‘아픔’으로 전이될 때는 나약한 인간인지라 당사자만큼은 아니겠지만 저도 진짜 많이 괴롭고 아팠습니다. 가족의 실종 이후 우울증을 앓는 의뢰자들을 만나 이야기하면서 저 역시 마음의 병을 앓기도 했습니다. 부모님의 너른 품과 가족의 따스한 웃음을 생각하면서, 크나큰 상실감에 몸부림치는 사람들과 함께하면서 가슴과 머리에는 수시로 통증이 생기곤 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제게 다가온 이들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도록 힘을 달라고, 그들에게 잃어버린 가족들을 만나게 하는 기쁨을 선사해달라고, 상처와 고통 속에서도 희망을 잃어버리지 않게 해 달라 하나님께 간구했습니다.
인간의 힘으로 도저히 어찌해 볼 수 없는 상황에서 기도로 응답받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병을 치유했다고 간증하는 분들의 말씀은 액면 그대로 믿기에 너무 놀랍지만 저는 제 일을 하면서 이런 기적이 의외로 이 인간의 세상에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기도의 힘이었습니다. 비록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이라도 늘 어딘가에서 헤매고 다닐 자신의 가족들을 위해 절실하게 하는 기도의 힘은 놀라운 나비효과를 일으키는 법입니다. 그래서 만들어진 기적은 수도 없이 많았습니다.
‘절실한 기도’에는 힘이 있습니다. 자기 자식과 멀리 떨어져 있어도 감정적인 공명을 하는 부모들의 사례를 보아도 허무맹랑한 소리가 아니란 걸 알 수 있습니다. 예지몽을 꾸어서 자식들에게 일어날 일을 예견하는 부모들의 이야기는 흔합니다.
저는 제 자신이 나약한 인간임을 깨달을 때마다, 그래서 도망치고 외면하고 싶을 때마다 기도합니다. 제가 절실하게 기도를 하면 하나님이 바로바로 그 절실함에 감응하여 응답해 주셨습니다. 그러면 저는 새 힘을 얻고는 다시 불끈 길을 헤매고 다닙니다. 제가 기웃대는 길목의 끝에서 누군가가 간절하게 저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제 발길을 세차게 이끕니다. 어느새 저는 달리고 있습니다.
저의 ‘아픔 나누기’는 오늘도 현재진행형입니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가족이 사라지고, 그들을 애타게 찾는 일이 아마 내일도, 모레도 진행형으로 머무를지 모릅니다.
하지만 믿습니다. 언젠가는 ‘182’번 전화기 벨이 울리지 않는 날이 기어코 올 것이라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