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연구원이다. 서강대학교 신문방송학과에서 공부하고, 서울대학교에서 언론정보학 석사, 박사 학위를 받았다. 대학 졸업 후 마케팅 리서처, 편성 전문 PD 등을 거쳐 2017년 현재 KBS 방송본부 연구원으로 재직 중이다. 주요 저서로는 <내 아버지로부터의 전라도>(2015), <나는 미디어다>(2009) 등이 있다.
이것은 마흔 살 한 남성의 개인적인 이야기만은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어디까지나 서울에 사는 평범한 인간에게 있어 대한민국이라는 공간과 해방 후 70년이라는 시간이 어떤 의미였는지, 그 시공간을 한 걸음 앞선 곳에서 걸어간 부모의 삶과 뒤에서 걸어간 아들의 삶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그리고 부모도 아들도 자주 외면하고 회피하려 했던 전라도라는 숙명이 삶의 빛깔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생각하고 답하고 있을 뿐이다.
그렇다고 나는 누구인가, 이런 거창한 질문에 대한 답을 찾고 싶었던 것은 아니다. 다만 삶이 어느 순간 도돌이표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알 수 없는 불안과 외로움이 지속되었다. 최선을 다하더라도 일도 사랑도 결국은 실패하는 인생이 아닌지, 내가 머무는 곳은 무슨 의미인지 늘 이런 의문에서 나는 자유롭지 못했다. 만나는 사람, 마주하는 사건, 삶에 대한 고민은 조금씩 달랐지만 나는 언제 어디서든 불안하고 외로워하는 마음을 마주하곤 했다. 그리고 이에 대해 어떤 방식으로든 해결책이 필요했다. 하찮은 감정으로 치부하기에는 그것이 빚어내는 삶의 장벽들이 너무도 거대하고 사실적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일에서도 사랑에서도 성실하고 성실하게 불안과 외로움을 떨쳐 보내려 했지만 결국은 잘되지 않았다. 실패에 실패를 거듭했고, 반복되는 실패는 자주 회환, 비애, 슬픔, 우울, 분노를 동반했다. 어째서 나는 불안하고 외로울까? 어째서 내 인생은 결국 실패일 거라고 생각할까? 어째서 최선을 다해도 결국은 홀로 남겨질 거라고 확신할까? 어째서 이 하늘은 이렇게 슬플까? 그런데도 왜 웃고 있는 것일까? 그런데도 왜 착하고 성실하며 자신 있는 척 연기하는 것일까? 알 수 없었다. 답을 찾기에는 관련된 이야기가 부족했고, 많은 정보들이 삭제되거나 빠져 있었다. 어떤 방식으로든 해명이 필요했고, 이를 위해서는 문장으로 ‘내 이야기’를 써나갈 수밖에 없었다. 나는 무엇이든 글로 써야만 문제를 이해할 수 있는 부류의 인간이었다. 그러나 글을 써야지 하는 생각뿐 오랫동안 손도 대지 못했다. 자주 지난 일기와 앨범을 들춰보고 머릿속으로 과거를 재연했지만 대체 무엇을 써야 할지 감을 잡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신문에서 ‘자기 역사 쓰기’에 관한 특집 기사를 보게 되었다. 개인의 삶을 역사화하는 임상 역사학자의 워크숍을 소개하는 기사였다. 워크숍을 기획한 역사가 이영남 박사는 자기 역사 쓰기의 의미를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은 자신의 삶에 관한 한 전문가들이다. 개인은 살아가면서 스스로 자신을 치유하고 모순이나 고민을 해명할 수밖에 없다. 이것들이 사적인 것으로 치부되곤 하는데 이런 영역도 공적인 세계로 가져올 수 있다. 인간은 지적인 욕구가 있어서 조금만 훈련을 받으면 누구나 자기 역사를 쓸 수 있다.”
그 기사를 본 후 나는 곧장 임상 역사학자 워크숍을 찾아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1주일에 한 번씩 1년 동안 자기 역사 쓰기를 위한 훈련(?)을 받았다. 이상하게 들릴 수 있지만 나는 자기 역사 쓰기를 훈련하는 동안 지루함이나 어려움을 느끼지 못했다. 거기서 배우고 듣고 교류한 이야기들이 내 삶과 직결된 문제였기 때문이다. 나뿐만 아니라 그 학교에 참여한 사람들이 대체로 비슷한 문제를 품고 살고 있다는 사실에서 위로와 격려를 얻기도 했다. 그곳에서 배운 이야기는 모두 내 삶을 위해 마련된 것들이었고, 내가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은 내 문제가 나만의 문제가 아님을 알게 해준 것이다. 이 글은 바로 거기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내 불안과 외로움을 이해하기 위해 내 마음을 억누르던 것들, 상처, 콤플렉스, 그림자 들을 기억 위로 꺼내놓았고, 부모의 삶과 시대적 풍경을 들여다보았다. 삶이 불안하고 외로울 때면 공책을 펼쳤고, 이야기는 내게서 가족으로, 가족에서 사회로 확장되어갔다. 모든 이야기의 배면에 깔린 한국 사회의 빛깔 속에서 깊은 슬픔과 적막을 느끼곤 했다. 자기 분석적이고 개인사적인 이야기를 출판물로 기획하는 것은 부담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것이 나르시시즘적인 욕망은 아닌지, 그것이 기억과 아픔을 세상에 파는 행위는 아닌지 자주 머뭇거리게 되었다. 이 글이 발표됨으로써 나와 가족들이 상처를 입지는 않을지, 그런 두려움도 있었다. 여러 번 펜을 놓았다가 다시 시작하는 일을 반복하였다. 하지만 내가 경험한 이야기와 그것이 빚어낸 정서들이 한국 사회에서 비단 나만의 것은 아닐 터, 그렇다면 한 번 작은 고함을 내지르자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불안과 외로움의 폐허를 질주하는 또 다른 나에게 거침없는 용기는 아니더라도 얼마간의 위안은 주고 싶었다. 내 작은 외침이 용감한 것인지 무모한 것인지 가증스러운 것인지 애처로운 것인지, 지금의 나는 잘 모른다. 역사학, 사회학, 심리학의 관점에서 이 글이 어느 지점에 위치하는지도 정확히 알지 못한다. 다만 어느 관점에서든 많이 부족하다는 사실만 알 뿐이다. 하지만 그것이 바로 2015년의 나라는 인간이고, 그런 면에서 나는 정직하게 지금 시점에서의 ‘오윤’을 이야기하고 있다고 말하고 싶다. 이 글은 많은 사람들의 격려와 응원, 그리고 그들이 내게 전한 이야기들을 기반으로 삼고 있다. 내가 그들에게 받았던 선의의 자극처럼 나 역시 불안하고 외롭고, 여전히 꿈꾸고 있는 사람들에게 티끌만큼의 자극과 격려가 된다면 그것은 기쁜 일이다. 아니 이 글을 통해 내 불안과 외로움을 또 다른 나에게 전염시키지 않게 된 것만으로도 다행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 글을 읽고 혹시 자기 이야기를 역사로 써보겠다는 생각을 하는 이가 있다면 글 말미에 붙인 참고 문헌이 작은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다. 이 문헌들은 내 자신마저 속이고 있던 내 이야기를 직시하고 표현하는 데 도움을 주었던 쟁기들이다.
마지막으로 이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전달될까 궁금해진다. 내 이야기가 이 땅 곳곳에서 살아가는 또 다른 나와 마주하고 연대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좀 더 많은 침묵의 역사들이 서로를 격려하고 위로하면서 이 땅 위에 작은 희망의 씨앗들을 만들어내기를 소망한다. 그러니까 《내 아버지로부터의 전라도》는 아무것도 아닌 ‘내’가 불안하고 외로운 또 다른 ‘나’와 더불어 함께 살아가겠다는 외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