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상 위에 있는 탁상 달력을 1월로 넘겨 본다.
빨간색 볼펜으로 친 동그라미가 빼곡하다.
22일 설날부터는 악몽 같은 시간이었다.
예술지원금 신청도 해놓고 설 명절도 잘 지내고 그날 밤부터 원인 모를 통증에 시달렸다.
“사람이 만일 온 세상을 얻고도 제 목숨을 잃는다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신약 성서의 말씀이 생각났다.
연휴라서 병원에도 못 가고 이가 부딪칠 정도로 떨면서 둔탁한 것으로 내려치는 듯한 어깨의 통증을 견뎌야 했다.
헬만 햇세가 말년에 유언처럼 쓴 시의 “내 의식이 깨어 있는 중에 죽고 싶다”고 한 대목도 생각했다.
결국은 응급실로 가 70일간의 입원 치료를 받았다. 퇴원 후에도 약해질 대로 약해진 영육의 회복은 더디기만 했다.
병은 자랑처럼 떠들어야 빨리 낫는다는 옛말이 있지만 지난해엔 빈혈증이 심한 중 코로나와 대상포진까지 앓았고 올 초부터는 ‘봉와직염’이라는 병마에 시달린 나는 감히 무얼 쓴다는 생각조차 못 하고 지냈다. 입원 중에 예술지원금 수혜 소식을 듣고도 마냥 기뻐하지도 못했다.
책을 묶는다는 것은 여러 면에서 신경 쓸 일이 많다. 여섯 번째 시집 『그리움은 지나야 온다』 이후 쓴 작품 중 54편을 나누어 1부는 자연과 계절, 2부는 가족사, 3부는 종교, 4부는 체험에서 얻은 소재로 했다.
시 쓰는 일이 하기 쉬워서 하는 게 아니라, 어렵지만 쓰고 나면 기분 좋은 일이라서 계속 쓰고 싶은 것이다.
올해 80이 된 내 삶이 얼마나 더 이어져 갈지 모르나 내 삶에 스며들어 온 것들을 정제하여 시로 표현하며 하나님 부르실 때까지 살고 싶다.
2023. 9. 초가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