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여자사범대(현 세종대학교) 전임강사
한국학중앙연구원 조교수, 부교수, 교수 (대학원장, 부원장)
영문학술지 The Review of Korean Studies 창간 Editor-in-Chief
독일 뒤스부르그 대학교 방문학자
네델란드 라이덴 대학교 교환교수
일본 동양대학 동양학 연구소 객원연구원
삶은 느끼는 사람에게는 슬픔입니다. 슬픔은 외로움의 감정입니다. 어느 철학자는 절망이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고 했습니다. 외로움은 절망에 이르는 병입니다. 결국 외로움이 죽음에 이르는 병입니다. 사람들은 외로움에 들지 않으려고 의식적으로 무의식적으로 노력합니다. 살려는 의지가 발동되는 것입니다.
조그만 시골 마을 외딴 집에서 밖을 내다봅니다. 할머니들이 오늘도 어김없이 경로당으로 모여듭니다. 이곳 경로당에는 할머니들뿐입니다. 다른 곳도 마찬가지입니다. 몸이 불편한 이들을 경로당으로 떠미는 것은 살려는 의지입니다. 할머니들이 ‘살려는 의지’가 무엇인지 알겠습니까마는 이들은 본능적으로 외로움이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는 것을 압니다.
그렇지만 성격상 남들과 부대끼고 사는 것이 불편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외로움이 생활화된 사람은 다른 방식으로 삶이라는 슬픔을 극복합니다. 예컨대, 사색의 시간을 갖거나 책과 같은 것을 통해서 타인의 내면을 공유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에게는 스스로가 원하건 원치 않건 언젠가 삶을 관조하는 시간이 다가오게 되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그 시간이 올 때 회한의 눈물을 흘립니다. 또 다른 사람은 그동안의 삶을 회상하며 혼자만의 미소를 짓기도 합니다. 그럴 때면 과거는 있는 그대로 그에게 다가갑니다. 기억에서 지우고 싶거나 아쉬웠던 일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과거는 돌이키거나 포장될 수 없습니다. 포장된 과거는 위선일 뿐입니다. 주마등처럼 가물거리는, 그래서 가까운 미래에 곧 사라져 버릴지도 모를 옛 이야기나 생각들을 그냥 내버려두자니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둘 생각나는 대로 써보았습니다. 이것은 타인의 공감을 얻어 외로움을 벗어나려는 시도입니다. 살려는 의지의 발현입니다. 그렇지만 글을 통해 타인을 감동케 하거나 감화하려는 의도는 애당초 없었습니다. 과장이나 미문으로 포장할 생각은 더더욱 없었습니다. 다만 가장 꾸밈없는 것이 가장 공감될 수 있는 것이라는 믿음에 의지하여 글을 썼습니다.
평생 철학책을 보며 살았기에 혹여 현학적 냄새라도 풍기지나 않았을까 살펴보았습니다. 한마디로 보통사람의 언어로 말하고 싶었습니다. 무히카는 보통사람처럼 말했지만 품격을 잃지 않았습니다. 보통사람의 언어가 사실은 가장 품위 있는 언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