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대 인간들에 대한 변명
200년에 걸친 십자군 원정은 그리스도교의 성지를 탈환한다는 명분의 전쟁이었지만, 이슬람을 비롯한 동방 문명에 대한 질투와 선망이 동기였다. 그들은 향료, 보석을 비롯한 동방의 문물을 약탈해 가면서 한센병(나병)과 흑사병(페스트)도 서구로 가져갔다. 그 결과 14세기 중반 유럽에서 시작한 페스트는 6천만 명이라는 엄청난 사망자를 냈다.
코로나19 바이러스는 대규모의 사상자는 없지만, 21세기 전 세계를 원정하며 인간 생활을 통제하고 있다.
이 시대 이후 세상은 많이 달라질 것이라고 한다.
페스트 이후 『데카메론』, 『페스트』 같은 작품들이 나왔듯이, 코로나19를 소재로 한 세계적 명작들이 쏟아져 나올 것인가?
사회적 거리두기 때문 대중을 상대로 하는 공연예술이 위축되고 있다. 극장이 문을 닫자 공연자들은 생계를 위해 생활현장에서 에너지를 소비하고 있다. 다수의 예술 촉매자들이 폐업하고 실직하는 상황에서 예술이 침체의 수렁에서 빠져나올 수 있을지 걱정이다.
내게 자발적인 자가격리는 문학 작업에 대한 성찰의 시간이다.
책을 읽지 않는 시대, 공연이 되지 못하는 희곡을 계속 써야 하는가 하는 자괴감이 강하게 밀려왔다.
작가는 시대 정신을 정확하게 읽고, 동시대 인간들의 치열한 삶을 진실하게 기록해야 한다는 변명을 마련하고서 그간 쓴 작품들을 정리했다.
여기에 실린 다섯 편의 작품은 그간 중앙지에 발표했던 세 편에, 창작뮤지컬과 신작 한 편을 더 했다.
이 작품들은 창작 레지던시를 찾아가며 썼다.
원주 토지문화관, 이천 부악문원 관계자들과 교정을 해준 송정혜, 강명숙 작가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2020년 7월
이천 부악문원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