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6년 독일 함부르크에서 유대인 부모 밑에서 출생했다.
1926년 만하임에 있는 김나지움을 다니다가 1933년-33년 오덴발트 학교를 다녔고, 부모를 따라 영국으로 건너가 판함에 있는 프렌스함 고원학교를 다녔다.
그 후 팔레스티나로 이민을 간 부모를 따라 예루살렘으로 가서 목공일을 배웠다. 1934년부터 런던의 대학에서 목공과 무대설치를 공부했다. 뉘른베르크 전범재판에서 동시통역관으로 근무한 후 재판기록을 정리했다. “47 그룹”의 회원. 1957년부터 스위스 포쉬아보에 살면서 활동했다.
그가 세인의 주목을 근 것은 미술작품 전시회와 희곡작품 때문이다. 특히 1960년 에어랑엔 대학에서 열린 세계연극주간에서 행한 “부조리극에 대하여” 라는 연설과 1980년 잘츠부르크 축제 개막 때 “음악은 무엇을 말하는가?”하는 제목의 연설이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그는 많은 독일어 작품을 영어로, 영어작품을 독일어로 번역했다.
Stefan Georges “영혼의 해”
Franz Kafkas “열 한 명의 아들”
Djuna Barnes “저녁 숲”
James Joyce “핀네간의 경야”
Samuel Beckett “서사집”
George Bernard Shaw “성녀 요한나”, “영웅들”
Ronald Searles “쿼바디스”
그의 단편집 “사랑없는 전설”은 독일 전후문학의 대표적 작품으로 자리매김했고, 산문집 “틴셋”으로 브레멘 문학상, 게오르크 뷔히너상을 받았다. 1977년 발표한 “모차르트” 는 베스트 셀러가 되었고 그의 작품 중 가장 많이 외국어로 번역되었다. 이 책은 밀로스 포먼의 영화 “아마데우스”와 그 후에 나온 미햐엘 쿤체의 뮤지컬 “모차르트!”의 준비자가 되었다.
자전적 소설 “마르봇 Marbot”은 동시대인들에 의해 포스트 모더니즘의 이정표라는 말을 들었다. 작가는 스스로 비극적이고 우스꽝스러운 산문집 “막스에게 하는 말”을 비극 후에 나오는 사티로스극이라고 칭했다. 그는 자연환경이 나빠지고 자연재해에 대한 두려움이 컸기 때문에 1984년 이후 더 이상 글을 쓰지 않고 미술작품 전시회만 하다가 1991년 타계했다.
‘1인칭 단수’로부터 ‘1인칭 복수’로 주어를 바꾸면서 한 가지 목표를 강조하는 셈이 된다. 그 목표란 우리는 그렇게 주어를 바꿈으로 해서 겸손의 복수(pluralis modestiae)가 되는 것도 아니고, 더 진지하게 말한다면 권위(den majestatis)가 생기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우리는 공통적인 저자의 입장을, 그리고 저자의 명제와 견해와 결론에 있어서 저자와 생각을 같이하는 모든 독자의 입장을 표현하고자 할 뿐이다. 분명히 그렇다. 저자는 상상력에서 나온 형상에 만족할 수밖에 없지만, 그렇다고 잘못된 상상에서 나온 형상에 대해서까지 만족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연구자나 전기 작가가 작품의 행간을 분석하고 다른 작품과 비교를 통해 분석하면서 내놓는 해설이 맞지 않는다거나, 그의 생활에 대한 검증가능한 데이터와 역사적 사실이 부합하지 않는다는 것을 인식하게 된다면, 그래서 모차르트가 아니라 어떤 다른 사람에 대해서 말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면, 이런 작가적 만족감을 포기하는 것이 그리 어려워서는 안 된다. 그런 작가들은 자기 스스로에게는 물론 우리에게도 자신의 잘못에 대해서 충분하게 해명을 하지 않았다. 그런 연구나 전기의 주장이 작가의 마음속에 감추어져 있는 권위에서 출발해서 권위 있는 말로 표현되어 있다면 이것은 역사적 사실과 추측의 경계를 허물어 버린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 나타나는 모차르트의 생활상은 대부분 허구적인 모양새를 하고 있다. 그 허구 속에는 모차르트의 모습이 길들여진 영웅의 모습으로, 아마도 약간은 구속받지 않는 것처럼, 당연하게 그러나 천박하지 않게 반항적으로 그려져 있다. 그러나 매번 그의 모습을 중개하는 사람에 의해 제대로 이해된 것처럼, 독자에게 나타나는 그의 모습은 항상 언제보아도 이해가 가능한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 전기에 나타난 그의 모습은 신화를 만들어 가듯이 그의 생애를 서술하는 데 익숙한 규범에 충실하게 그려져 있다. 빈에 활동하던 모차르트를 서술하면서 작곡가가 어떤 모델상을 보여주었다는 주장이 있다. 즉 그는 자기 활동을 통하여 사회학적 계층에서 예술가 층이라는 상위개념을 확장시킨 사람이 바로 모차르트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이제 아무 거리낌 없이, 이구동성으로 그런 인물이 되어 버린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라는 주어는 화해(和解)의 복수(複數, pluralis concordiae)이다. 그러나 나는 독자들을 당장 심사숙고하도록 요구하지 않고, 선입견이나 감정에 얽매이지 않고 가짜임이 분명한 주장에서 벗어나 새로 밝혀진 입장을 받아들이려는 거리감의 시도를 할 때에는 언제나 1인칭 단수인 ‘나’를 사용할 것이다. 우리는 모차르트에 접근할 수가 없다. 그러나 접근할 수도 있다: 그에게 접근하려는 억누를 수 없고 줄어들지 않는 의지가 있고, 지금까지 제시된 모든 자료와 근거를 바탕으로 모든 사실을 재작성하고, 또 그 사실에 맞추면서 작품을 체계적으로 재정리한다면, 비록 우리 상상력의 벗어날 수 없는 한계를 실감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가능한 실제의 개개 관점까지 모두 놓쳐 버리는 것은 아닌 것이다. 그렇다고 불분명한 것과 도저히 믿을 수 없는 것이 어느 날 갑자기 분명해지고 믿을 수 있게 되는 것도 또한 아니다. 이와는 정반대이다. 모차르트의 생애와 그의 활동 사이의 모순, 한 번도 그가 직접 표현한 적이 없지만 그의 욕구와 자신의 환경에 대한 관계 사이의 상충을 알면 알수록, 그가 무엇을 통해서도 더는 반항할 수 없었고, 우리가 끊임없이 반복적으로 경험하는 것처럼 그것을 최종적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된다.
허구 속에는 등장인물 뒤에 저자의 심리적·정신적인 사고 구조가 명백히 드러난다. 그렇다고 저자의 객관성의 정도가 질을 측정하는 척도가 되는 것도 아니다. 바로 노이로제가 작품에 편집광적이고, 그리고 가끔은 화려한 주관성을 부여한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는가? 그리고 그 주관성을 통해서 작품은 유일한 가치를 획득하게 되는 것이다. 이와 반대로 전기에 있어서는 이 주관성의 정도가 결정적 잣대로 사용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독자가 원하는 것은 전기 작가가 아닌 전기의 내용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점에 있어서도 독자는 서술되는 사람의 주관적인 견해 속에 포함되어 있는 객관적인 것을 알게 된다. 그것을 받아들이거나 그것을 거부하는 것도 독자의 몫이다. 우리는 독자가 독자 자신의 주관성을 잊지 않고 있을 바로 그때에 독자의 견해를 받아들여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확신의 권위에 질과 원칙이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그런 면에서 저자는 이미 전에 저자 자신의 확신의 모습을 제시했음에 틀림이 없다. 저자가 마음에 품고 있던 그 견해를 증언한 것 말이다. 왜냐하면, 과거의 인물을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자기 스스로를 이해하려는 시도를 하지 않았음에도, 다른 사람들이, 그것도 과거에 존재했던 한 천재의 모습을 이해하는 것은 전적으로 불가능하다. 천재의 정신과 해설자의 정신 사이에 별로 감정적인 공통점이 없기 때문에 해설자는 정신분석의 지식을, 자세히 말하자면 해설자가 실제로 경험한 그 정신분석의 지식을 여기에 적용해 볼 것이다. 왜냐하면, 정신분석학은 해설자에게 그의 대상과의 관계의 정도와 그의 대상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정도를 가르쳐 주기 때문이다. 그래야 비로소 긍정적인 감정과 부정적인 감정을 가능하면 멀리할 수 있다. 또 정신분석학은 해설자에게 정신의 전형적인 반응의 다양한 가능성을, 가장 깊은 곳에 있는 악몽까지라도 자기 자신의 영혼의 잠재적인 반응을 척도로 측량하지 않고 인식의 확실한 도구로 사용하도록 가르쳐 주었다. 모차르트의 경우에는 모든 전기 작가가 그렇게 했다. 그래서 희망사항과 진실 사이의 경계를 지워버렸다. 인간 모차르트의 모습은 변명과 칭송 사이를 오가고 있다. 브루노 발터(Bruno Walter)가 “모차르트는 개방되고 믿을 만한 사람이었고, 또 항상 기분이 좋고 악의가 없는 젊은이였다”고 말한다면, 그는 일반적으로 마음속에 품었던 희망과 함께, 자기가 원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심리학적인 지식의 한계를 다 드러낸 것뿐만 아니라, 별 생각 없이 자신이 잘 보여야 하는 청중의 귀에, 모차르트는 그런 사람이었으면 좋겠다는 식으로 그들이 원하는 소리를 한 것이다. 실제로 발터는 모차르트를 늘 그렇게 존경했다.
바로 그것이 통속적인 전기의 비극이다. 전기를 보면 어디에서나 우리가 이해할 수 있고 우리의 경험 반경 안에 있을 수 있는 개연성으로 그럴 듯한 설명을 한다. 그러니까 희망하는 대로 생각하는 것이다. 일차적인 자료가 바로 저술 동기, 즉 희망하는 관측과 일치하는 것이다. 전기를 쓰는 사람은 주인공과 동일시하고, 자신을 주인공에게 밀착시키기 때문에 모든 서술을 전혀 믿을 수 없게 만들어 버린다. 왜냐하면, 우리는 잠재력이 서로 동일하지 않다는 관점에서 모든 것을 관찰해야 하기 때문이다. 모차르트는 그를 해설하는 사람과는 다른 법칙에 따라 등장했다. 지금까지 모든 전기 작가는 그가 불쌍하고 품위 없는 지상의 생활을 했음에도 결국에는 창조적인 사람이 갈 수 있는 황홀한 경지에서 작품을 완성했다는 명백한 결론을 맺고 있다. 그에게는 더는 당할 소위 고통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누구를 위하여? 라는 질문은 아직 하지 않았다.
그가 겪은 모든 고통은 후세를 위하여 그렇게 순화되어 버렸다. 그래서 갈등은 온통 슬픔으로 차 있지만, 온전한 아름다움은 동시대로 되돌려지는 듯해 보인다. 예를 들어서 베른하르트 파움가르트너(Bernhard Paumgartner)는 모차르트가 1781년 대주교와 결별한 후 빈에 머문 것을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다. “도나우 강가의 이 도시는 자애로운 팔을 벌리고 폭풍처럼 등장한 예술가를 대가로서 활동할 수 있도록 고향처럼 그를 감싸 안고 있다.” 이 문장은 우리에게 극단적으로 몰아붙이는 전형적인 예처럼 보인다. 여기에 비정상적인 모습이 그대로 드러난다. 저자의 허영심에 찬 명예욕, 감당할 수 없는 주제를 목전에 두고 단순하게 진실을 서술하지 않고 너무 높은 차원에서 글쓰기를 시작한 것이다. 대신 이렇게 해야 옳았을 것이다. “모차르트는 계속 빈에서 살았다. 자기의 기대와는 전혀 다른 주위 환경과 관계를 맺으면서”. 이것은 독자를 위해 준비된 그림이다. 거기에는 상상할 수 있는 경계 안의 모든 것이 다 있다. 아니면 적어도 저자의 이해가능성이 있는, 그래서 독자에게 그럴듯하게 보이는 가능한 모든 것이 다 있다. 질서에 대한 모태로서 지나치지 않는 것, 용인할 수 있는 것 그리고 거절할 수 없이 지배하려고 하는 아버지로서 교육적인 것, 확실한 것, 즉 국가적인 범주를 생각하면서, 그러니까 저자는 오스트리아인으로서 주인공과 동일시하기 위해서 무의식적인 의지의 표현으로 열정적인 단어를 선택한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자애로운 팔’과 저 ‘도나우 강변의 도시’와 또 ‘폭풍을 움직이는 예술가’와 그들을 ‘에워싸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대가가 활동한 고향’이라는 표현에 혼란을 느낀다. 이 표현에는 모차르트가 빈에서 무엇을 성취했고 안식을 찾았다는 것을 함의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 모든 것을 전부 교정해야 한다, 이미 알려진 바와 같이 상황은 정반대였다.
여하튼 ‘에워싸고 있다’는 완곡한 그림 같은 표현은 인기가 있어 보인다. 알프레드 오렐(Alfred Orel)의 전기에는 그것이 자애로운 팔이기보다는 전적으로 소유하고 있는 존재로 나타난다. “그렇게 도나우도시는 볼프강 아마데우스를 비밀스러운 마술로 붙잡고는, 그 전이나 그 후에도 많은 사람을 그랬던 것처럼 그를 붙들고 더는 놓아 주지 않았다”라고 묘사하고 있다. 이 대목에서도 바꾸어야 할 것이 많다. 모차르트를 붙잡은 것은 ‘비밀스러운 마술’이 아니라 그가 평생 벗어나지 못한 돈고생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는 영국으로 갔고, 그곳에서 아마도 행운을 찾아보려고 했을 것이다. 1786년 을 초연한 다음, 만약 한 도시를 집합적인 의지를 지닌 사람으로 표현할 수 있다면, 이 도나우 도시는, 그 후에 구스타프 말러(Gustav Mahler)와 아르놀트 쇤베르크(Arnold Schonberg)를 그랬듯이, 볼프강 아마데우스를 내쳤다. 여기에는 트라우마(精神的 外傷)에 대한 보상심리가 거짓 속에 깔려있다. 이는 사실을 매만지려는 것이자 사태의 진실을 왜곡시키기까지 하는 것이다.
이렇게 빈이 모차르트를 부당하게 취급한 데 대해서 공통적으로 변론을 하는 변증론자의 무리가 생겨났는데, 이들은 자기들의 문화애국주의 때문에 보상할 수 없는 오점을 지워버리고자 기를 쓰고 있다. 그러나 그 변명들은 이중적인 애착, 즉 영웅에 대한 애착과 작가가 소속된 조국과 같은 고향에 대한 애착으로서 특징적이고 비본질적인 예에 지나지 않는다. 모차르트를 제대로 인정하지 못한 점에는 잘츠부르크도 역시 한 몫을 한다. 왜냐하면, 모차르트는 이 도시를 정말로 증오했고, 고향 사람들에 대해서 명예훼손죄의 경계를 넘나들 정도의 언어를 동원해서 욕을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문제에 대해서 잘츠부르크는 모든 것을 무시하고, 모차르트와 그의 고향 사이의 조화로운 관계를 깨뜨렸다는 문제를 인정해 가면서도, 그가 바로 이 도시에서 태어났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이러한 요구는 후고 폰 호프만슈탈(Hugo von Hofmannstahl)이 두리뭉실 감추고 있다. “모차르트는 그곳에 있었다, 새 유럽과 옛 유럽이 만나는 땅, 로마인과 독일인과 슬라브인이 서로 경계를 이루는 지역, 바로 그곳에서 완벽한 충만감을 주면서 자연처럼 자연스럽게, 자연처럼 순수하게 우리 시대의 진정하고 영원한 음악이 탄생한 것이다.”
이런 문장을 비판적으로 읽으려는 시도는 재미가 없다. 왜냐하면, 이 문장의 진술내용이 도저히 파악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 말고도 맞지 않는 것은 ‘위대한 작품’ 중 몇 개 되지 않은 작품이 잘츠부르크 지방에서 만들어졌다는 점이다. 또 위대한 음악은 결코 신화적인 어둠 속에서 또는 고향과 관련이 되어서 만들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무의식적인 동기가 의식적인 선율과 마디마디 엮이면서 만들어진 이 위대한 음악은, 우리가 자연에 대해서 순수하다거나 때가 묻었다는 수식어를 붙일 수 있다고 하더라도, 자연처럼 자연스럽지도 않고 자연처럼 순수하지도 않다. 그러니까 모차르트에 대한 후세의 서술이 이런 식으로 핑계나 미화로 칠해지는 것을 바로 잡는 것이 중요하다. 작가의 말이 중요하다고 인정하자. 그것도 주인공처럼 자신의 능력을 증명해 보이자고 애쓰는 작가의 말이 중요하다고 인정하자. 그러나 이 주인공은 어떤 범주의 창시자로서의 기능을 위하여 아름다운 정신의 문학적인 자유와는 다른, 새로운 요구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 더 중요한 것이다.
비교적 객관적으로 묘사하려고 하는 모차르트 문헌에서조차도 그에 대한 가정을 숨길 뿐만 아니라 동시대인들의 신빙성과 객관성, 무엇보다도 모차르트 자신의 증언을 전제로 해서 어떤 결론을 내리고 있다. 오늘 우리는 자신의 증언조차도 객관적이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더군다나 모차르트에 대한 서술은 전혀 객관적이지 않다. 그의 증언 중에는 정신적인 동요를 말하면서 점차적으로 그의 진술이 경박해지는 현상을 볼 수 있다. 그렇지만 우리는 그가 정신의 깊숙한 곳에 있는 본질을 전혀 언어로 표현하지 않았음을 알아야 한다. 만약 자기증언이 사실과 부합된다고 하더라도 그 증언은 어떤 목적을 위해서 변형된 것이다. 작가는 모차르트의 가슴 속에 있는 영혼을 이해할 수 없다.―작가에게는 모차르트가 자기에게 주어진 주변의 요구에 얼마나 확신을 가지고 말했는지 알리기 위해서 그가 사용한 여러 겹의 옷을 벗길 능력이 없는 것이다―. 더군다나 그의 가슴 속에는 둘 이상의 영혼이 있었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잘 드러내지도 않았다! 작가가 주인공을 전 역사를 통해서 가장 위대하고 가장 신비에 둘러싸인 음악가로 만드는 법을 마음대로 구사할 수 있다면, 그가 구체적으로 한 말도 잘 이해해야 한다. 그는 엄청난 양의 통합적-감정적인 화법을 구사할 줄 알았는데, 그는 여러 번 그런 말로 마음에 없는 말을 하기도 했고, 때로는 자신의 진심을 그런 말로 숨기기도 했다. 그는 일부러 잘 보이려고 그런 말을 하지 않았고, 구태여 객관적 사실을 말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관념으로 말하지도 않았다. 그가 얼마나 여러 가지로 자신을 표현하려고 했는지는 모르지만, 글을 쓸 때는 등장하는 인물의 일인칭을 사용했다. 그는 그의 원래 모습을, 그가 보고 싶은 자신의 모습을, 또 그가 그렇게 보여야 하는 자신의 모습을, 또 다른 사람들이 보는 자신의 모습을, 또 다른 사람이 보고 싶어 하는 모습을, 그리고 또 다른 사람이 자기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를 글로 썼다. 그렇기 때문에 그가 남긴 말을 통해서는 그가 과연 어떠한 사람이었는지 확실히 알아낼 수가 없다.
그가 직접 한 증언에서조차도 그의 본심이 드러나지 않기는 하지만, 그가 남긴 일차적 자료는 모두 수집되어 분명하게 남아있다. 추가로 그의 말들이 발굴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용을 결정적으로 바꿀만한 것은 이제 더는 나오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까 이제 누구나 각자의 능력과 희망에 따라 그 당시 모차르트가 처했던 상황에 그가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 해석하고 결론을 낼 수 있다. 그렇다고 그러한 작업이 모차르트의 본질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는 장담할 수 없다. 금세기 어떤 천재의 주관적인 삶과 경험을 어떤 그림으로 만드는 것도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더군다나 과거 역사의 한 천재를 제대로 이해한다는 것은 우리의 상상력이 아무리 뛰어나도 그와의 시간적인 거리, 그 시대와의 거리, 또 그가 산 삶의 길이의 차이 때문에 불가능하다.
그래서 나는 의식적으로 독자들에게, 독자들의 상상력뿐만 아니라 상상하려는 의지에 이것을 맡기고 싶다. 자연스럽게도 설득력은 이해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건너 쪽에서 끝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그것은 어떤 인식이 잠재적인 수용자의 의지에 의해 시험되기도 전에, 이 제시되는 인식에 대한 자동적인 방어반응이다. 우리가 이런 식의 수용에 대한 거부반응의 원인을 추적해 본다면, 작가들이 같은 자료로 서술하지만 각각 다른 결론에 도달하게 되는 점의 타당성을 어느 정도 인정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어떤 전기 작가가 자기가 얽매여 있는 그림이 너무 강렬해서 더는 그 그림에서 떠나지 못하거나 떠나지 않으려고 한다면, 그래서 낡았지만 아름답다고 인정받은 그 결론에서 벗어나지 못해서 자신의 생각을 바꾸려 하지 않는다는 인상을 보인다면, 우리는 그의 주장을 전혀 인정하지 못할 것이다. 독자는 이런 시도의 진실성만을 검토할 것이 아니라, 이미 만들어진 모차르트 상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자신의 의지가 있는지도 물어 보아야 할 것이다.
음악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우리는 지금 두 가지 체제를 가진 악보를 연주해야 하는데, 하나는 모차르트 음악에서 보듯이 선율이 이끌어 나가는 악보이고, 다른 하나는 그의 외적인 생활이 보이는 통주저음 악보이다. 이 둘을 연결하는 중간 성부, 그의 무의식과 내면적 충동과 강박감이 나타나는, 바퀴와 원동력이 연결되는 중간 음들이 빠져 있다. 왜냐하면, 모차르트는 중간성부가 빠진 이유에 대해서 한 번도 제대로 발설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미 주어진 두 개의 체제에 이 둘을 연결 짓는 세 번째의 체제를 만들어야 하는 작곡 과제를 안고 있다. 이 과제는 모차르트라도 자기 제자에게 욕설을 하며 내주었을 것이다. 이런 것들을 우리는 전기 작가의 작품에서 관찰해야 한다. 그들은 과연 두 가지 존재, 즉 그의 경험과 작품 속에 나타난(우리가 그렇다고 믿는) 그의 생활을 서로 연결하는 세 번째의 체제를 추가로 작곡했는가를 말이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까지 수백 년간 옳다고 믿어 온 모든 전기와 모든 역사서술을 다시 의문의 관점으로 바라보아야 하고, 지금 우리 눈에 보이는 모차르트의 모습과는 다른 그의 새로운 모습을 보려면 모차르트 존재에 대한 총보를 이 작업으로부터 해방시키려는 시도가 우선되어야 한다.
그러려면 지금까지 형성된 모차르트 상을 모두 지워야 한다. 그렇다고 독자와 주인공 사이를 매개할 필요까지는 없다. 이와는 반대로 이번 시도의 진정한 의도는 양측의 거리를 더욱 넓히는 데 있다. 다시 말하면 후기 절대주의 시대에 활동하던 모든 인물과 모든 영혼을 진정으로 이해하려면 공론을 벌이는 각 세대 사이의 거리뿐만 아니라 모차르트가 가진 내면세계와 우리가 각자 우리 식으로 또는 우리식 사고로 무장된 불충분한 개념 사이의 극복할 수 없는 거리를 더욱 넓혀야 한다. 이런 현상의 거리를 설득력 있게 묘사하겠다는 시도를 제대로 성공시킨 사람은 아직 아무도 없다. 그 이유는 모든 전기 작가가 한 가지 그림에만 의존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경험세계 굴레와 습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래서 그 그림 안에는 이해되지 않는 부분을 과장해서 서술하고, 중요하지 않아 보이는 것을 과감하게 생략하고, 고통스러운 장면을 우회적으로 설명했다. 그래서 그려진 모습은 위로 올려지기도 하고, 무엇보다도 아래로 내려져서 어느 면에서 보더라도 모두 매끈하고 가다듬어져 있다. 그래서 모차르트의 모습은 아폴로의 이상형―우상―의 모습을 하고 있다. 그런데 이 모습은 자주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 알프레드 아인슈타인(Alfred Einstein)은 “모차르트도 자기 안에 모순을 가진 인간이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우리 모두가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지만, 천재에게는 분명히 용인되지 않는 특징 중 하나를 이해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모차르트는 아폴로적인 이상형을 전혀 닮지 않았다. 우리에게 전해지는 그의 모든 외적인 모습, 말로 남긴 문서의 어법, 필적, 구두점, 동작과 표정 들은 오히려 디오니소스의 모습에 가깝다. 그러나 이 모습은 디오니소스의 역할과도 다르다. 왜냐하면, 정확하지 않은 이런 형태론으로는 그를 정확하게 분류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그의 작품도 전혀 이러한 카테고리 안에 포함되지 않는다. 악보를 쓴 그의 필적을 보면, 엄청난 음악적 전경을 휘갈겨 쓴 것에 이미 그가 이 음악을 완전히 장악하고 있음을 분명히 확인할 수 있다. 분명하고 일목요연하고, 마지막 획까지 늘 같은 투이고, 읽기 쉽고, 한 번도 고친 적이 없는―왜냐하면, 작품은 악보로 옮기기 이미 오래 전에 이미 완성되어 있었기 때문에―여기저기에 주관적인 감정이 역동적인 모습으로 휘갈겨 쓴 필체로 드러나 있다. 이 작품에는 모든 것이 승화된 낯설음으로 모든 것이 불안하고, 객관적으로 볼 때 모든 것이 본질적이다. 모차르트의 자기증언이 역사적 사실을 규명하면 할수록 그의 진정한 모습은 우리에게서 멀어진다. 자기증언은 음악 뒤로 숨고, 그 모습이 조금 드러난다 하더라도 음악외적인 개념성을 허락하지 않는 한에서는 그 인물의 진정한 모습에 우리는 접근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