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어느 시기부터 이게 인생이구나 하는 걸 자각하는 걸까요.
객관적으로 보면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인생을 살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인생이구나 하는 자각을 갖게 되는 건 그와는 훨씬 떨어진 시기가 됩니다.
저의 경우는 고등학교 시절이 그때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이런 게 인생이냐 하는 어카심정이 그때 있었습니다. 그래서 집을 나와 청량리에서 강릉행 완행열차를 탔습니다. 저의 고등학교 시절에는 아직 완행열차가 다니고 있었으니까요.
야간열차를 타고 새벽에 도착해 경포에서 바다를 보았습니다. 많이 초라한 그런 것.
저의 인생자각은 그렇게 바다와 더불어 시작되었습니다.
그 바다 이야기를 해보려고 펜을 들었습니다.
그러니까 ‘나의 인생’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이야기는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말았습니다.
나의 이야기가 아니라 남의 이야기를 써내려가고 있었으니까요. 구체적으로는, 바다로 가 바다에서 사라지기로 한 어느 청소년기 아이의 이야기였습니다.
쓰면서 꽤 후회했습니다. 그러나 다 탈고하고 나서는 후회는 사라졌습니다.
저의 이야기든 남의 이야기든 인생이야기는 의미가 있는 것이었으니까요. 짧게 살고 간 아이의 이야기라면 더 의미가 있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저의 경우는 바다는 인생의 시작지점입니다. 정확히는 봄의 경포 앞바다.
이 이야기의 아이의 경우는 인생의 시작지점이 또한 마지막 지점이 되고 만 경우입니다. 슬픈 이야기지요.
바다에서 일어난 큰 사고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서해 페리호 사건이나 세월호와 같은……
타이타닉이나 포세이돈 어드벤처 같은 영화이야기와도 닮은……
마지막으로 정작 이야기에서 하지 못한 말을 끝으로 서문을 마치겠습니다.
‘뒤늦게나마 사고로 죽은 아이들의 명복을 빕니다. 그리고 다행히 살아남은 아이들에게는 앞으로도 내내 신의 가호가 깃들기를 바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