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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김조규

출생:1914년, 평안남도

사망:1990년

직업: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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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6월 <김조규 시선>

김조규

1914년 평안남도에서 출생, 1931년 등단 이후 평양을 기반으로 작품 활동을 했다. 해방 이후에도 북한에서 창작 활동을 지속했던 까닭에, 1930∼1940년대 시단에서 주목받았던 시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남한에서는 논의되지 않았다. 1988년 월북 문인 해금 조치 이후 동생인 김태규 시인과 김조규가 수학했던 숭실전문학교를 전신으로 하는 숭실대학교를 중심으로 그에 대한 재조명이 시도되었고 이를 계기로 김조규에 대한 논의가 활성화되었다.

김조규는 1914년 1월 20일 평안남도 덕천군 태극면 풍천리에서 김명덕 목사의 2남으로 출생했다. 1926년 평양 숭실중학교에 입학했고 1929년에는 광주학생사건으로 체포되어 평양 감옥에서 미결수로 복역했다. 1931년 10월 ≪조선일보≫에 시 <연심(戀心)>, ≪동광≫에 시 <검은 구름이 모일 때>를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1932년 평양 숭실전문학교 문과에 입학, 1937년 졸업해 함북 성진 보신학교 교사가 되었다. 1938년 ≪단층(斷層)≫의 동인으로 활동했고 ≪맥(貘)≫에 작품을 발표하기도 했다. 1939년 만주 조양천 농업학교에서 영어 교사를 했다. 1941년 만선일보 편집국에 입사, 박팔양, 안수길 등과 기자 생활을 했다. 1942년 ≪재만 조선 시인집≫(예문당)을 편집, 출판했고 1945년 3월경 만주에서 돌아와 해방을 맞이했다. 해방 직후 중고등학교 국어교과서 편찬 작업에 착수했고 10월 평양예술문화협회 창립에 동참했다.

1946년 1월 평양예술문화협회가 강제 해산되면서 2월에 문학동맹에 편입되었고, 조선신문 편집 기자로 일했다. 1947년 시집 ≪동방≫(조선신문사)을 출판했다. 1947년 조선신문이 폐간된 후 평양예술대학 교수가 되었다. 1950년 종군 작가단에 참여했고, 1951년에는 시집 ≪이 사람들 속에서≫를 출판했다. 작가동맹 기관지인 월간 ≪조선문학≫, 월간 ≪문학예술≫의 책임 주필이 되었다. 1952년 조선인민중국방문단 부장으로 중국을 방문, 12월에는 오스트리아의 빈에서 열린 세계인민평화대회에 대표로 참가했다. 김일성대학 문과대학 교수가 되어 1956년 8월까지 근무했다. 시집 ≪김조규 시선집≫(조선작가동맹출판사), 동시집 ≪바다가에 아이들이 모여든다≫(아동도서출판사)를 출판하는 등 지속적인 창작 활동을 했다. 1990년 12월 3일 별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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