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시집은 바보 나그네, 두 할머니의 싸움, 인생(人生)에 이은
나의 네 번째 시집이다.
시집을 출간하는 건 누군가에게 째를 내려고 하기 위함이 아니다.
시를 쓴다는 건 미성숙한 나의 인격을 뉘우치고, 통렬히 회개하며
나 자신을 정리 정돈하는 시간이다.
수많은 시를 쓰고 여물지 못한 꿈을 그리움으로 담아 철없이 노래 불렀다.
시를 쓰고 난 이후 문학 행사에 초청을 받아 사회를 보거나,
시 낭송과 노래를 부르고, 강단에 서기도 했다.
또한, 예상치 못하게 유명 작곡가와 인연이 되어 작사도 하게 되었고,
분에 넘치는 사랑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은 신기루와 같은 것이다.
나의 시가 단 한 명이라도 고독하고 외로운 영혼을 달랠 수만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진정 의미 있는 일이다.
나는 여전히 어린이가 맑은 눈동자로 파란 하늘을 바라보듯이,
꽃과 나무를 보며 숲속의 새와 이야기할 것이다.
산과 들 그리고 강가를 거닐며 고개 숙인
작은 풀꽃들을 들여다볼 것이다.
이 싸늘하고 황막한 대기 속에서 같은 울음으로 진통하는
모든 것들을 바라볼 것이다.
그리하여 다시는 되돌아갈 수 없는 기억의 회랑에는
추억이라는 미세한 입자들이
켜켜이 쌓여 작은 울림으로 내 가슴속에 남아 있을 것이다.
이제 모든 것을 내려놓고 나에게 남겨진 날을 묵묵히 걸어가며,
만인(萬人)이 칭송하는 큰 바위 얼굴을 닮은 어니스트(Honest)처럼
무욕(無慾)으로 늙어가고 싶다.
마른 잎, 바람 스치는 소리에도 귀 기울이며 나지막이 살고 싶다.
2021. 봄에
山岷雨 정진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