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부에서 태어나 인천에서 성장했고 인하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2000년 계간 작가들에 단편소설을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뒤집기 한판』(2007), 『삼류가 간다』(2010), 장편소설 『배달부 군 망명기』(2014), 장편소설 『장미와 플라톤』(2020)이 있다.
전국언론노동조합 인천일보 지부장을 맡으며 언론 노동운동을 했다.
건설현장에서 전기공으로 일했다. 제주도에서 음악강좌 ‘무라카미 하루키 음악다방’을 진행했고, 에세이 『무라카미 하루키 음악다방 - 하루키 소설로 본 록과 재즈의 역사』(2019)를 출간했다.
‘무라카미 하루키 음악다방’은 하루키 소설과 소설에 등장하는 음악에 대한 감상을 나누는 만남의 자리다. 일종의 ‘기획 다방’으로 보면 된다. 내 삶에 실재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나는 이곳에서 음악을 듣는다. 닳아빠진 책 표지 같은 재즈와 녹슨 칼 같은 록을 듣는다. 음악이라는 낡고 텁텁한 공기를 마신다. 존 레넌과 밥 딜런, 브루스 스프링스틴을 듣는다. 레스터 영과 텔로니어스 멍크, 마일스 데이비스를 듣는다.
탁자 위에는 체 게바라의 초상화가 그려진 머그컵이 놓여 있다. 찌그러진 담뱃갑과 어디선가 굴러 들어온 일회용 라이터가 있다. 건너편 바 카운터에는 무라카미 하루키를 닮은 사내가 커피를 내린다. 사내의 어깨 너머로 오래된 레코드들이 숨을 죽인 채 도열해 있다. 레코드 수납장 맨 위에 한대수의 사진이 놓여 있다. 카운터 옆에 공중전화기가 서 있다. 고물 오디오가 있다. 아주 이따금 제대로 된 소리를 내는, 찢어진 스피커가 있다. 턴테이블이 무딘 바늘을 뻗고 납작 엎드려 있다. 에곤 실레의 벌거벗은 소녀 그림도 걸려 있다.
나는 실체를 알 수 없는 힘에 떠밀려 글을 쓰기 시작한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을 읽고 소설에 등장하는 음악에 귀를 기울인 채 글을 쓴다. 학생들이 쓰다 버린 노트에, 이면지에, 메모지에 볼펜으로 무엇인가를 긁적인다. 프루스트의 말처럼 상상이란 없다. 단지 기억만으로 여백을 채워 넣을 뿐이다.
음악에 대한 기억을 되살린다. 조각난 기억의 퍼즐 조각을 맞춘다. 퍼즐은 록의 역사가 되고 재즈의 역사가 된다. 어느덧 여백은 채워지고 퍼즐은 완성된다. 그것은 개인의 기억이자 집단의 기억이다.
이 책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에 대한 서평이자 하루키 소설에 등장하는 음악에 대한 감상이다. 록과 재즈의 역사를 요약한 노트이자, 독자들을 록과 재즈의 세계로 이끌어 가는 안내서다. 내 삶의 자전적 기록이다. 나는 문학평론가도 음악평론가도 아니다. 그렇지만 나는 이들과 다르게 오로지 나만의 방식으로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을 읽고 소설에 등장하는 음악을 감상했다.
‘무라카미 하루키 음악다방’에는 1960년대의 아련한 꿈이 있고 70년대의 자유정신과 80년대의 억압이 있다. 90년대의 좌절과 2000년대의 환멸이 상존한다. 꿈과 억압, 좌절과 환멸의 한복판에는 어김없이 음악이 가로지른다.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이 어둡거나 무겁거나 한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글을 쓰는 시간 내내 음악을 들으며 나는 들뜬 감정을 유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음악이란 그 어떠한 상황에서도 인간의 감정을 정화시키거나 증폭시키지 않는가.
내가 이 책을 쓸 때만큼이나 당신도 이 책을 즐겁게 읽어 주기를 바란다. 이 책이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과 록과 재즈의 세계로 들어가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