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평론가. 서울대학교 불문과를 졸업하고 1983년 프랑스 파리 10대학에서 「앙드레 브르통의 초현실주의 소설 3부작의 형태와 의미에 관한 연구」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서울대학교 불문과 교수를 역임했으며, 현재 명예교수이다.
197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평론 「동물의 이미지를 통해 본 이상의 상상세계」가 당선되어 평론 활동을 시작했다. 평론집으로 『삶을 위한 비평』(1978), 『현실의 논리와 비평』(1994), 『그리움으로 짓는 문학의 집』(2000), 『문학의 숲에서 느리게 걷기』(2003), 『위기와 희망』(2011) 등이, 연구서로 『프랑스어 문학과 현대성의 인식』(2007), 『초현실주의 시와 문학의 혁명』(2010), 『미셸 푸코와 현대성』(2013) 등이 있다. 번역서로는 프레베르 시집 『장례식에 가는 달팽이들의 노래』(2017), 프랑스 현대 시를 모은 『시의 힘으로 나는 다시 시작한다』(2020), 앙드레 브르통의 소설 『나자』(2008), 그리고 미셸 푸코의 『감시와 처벌』(1994), 『육체의 고백』(2019) 등이 있다. 현대문학상, 대산문학상, 팔봉비평문학상, 우호학술상, 대한민국학술원상, 수당상을 수상했다.
문학의 물량적인 풍요로움과는 달리, 문학의 위기는 계속 심화되어가고 있다. 사람들에게 재미를 주는 문학은 있어도, 감동을 주는 문학은 잘 보이지 않는다. 문학이 어둠 속에서 길을 가르쳐주고, 구원의 빛처럼 인식되던 시절은 이제 완전히 사라져버린 것일까? 지난날의 영광을 되찾기 위해서, 작가들이 문학을 멀리하는 대중들의 눈높이에 맞추어 글을 써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다시 말해서 문학의 대중화를 시도해야 한다는 것인데, 나는 문학의 대중화야말로 문학정신을 상실한 채, 문학의 죽음을 앞당기는 것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유종호 선생의 말처럼, “대중문화의 기고만장한 위세를 누르기 위해서는, 본격문학이 보다 압도적인 위엄을 보여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는 것이 문학의 위엄을 보여주는 것일까?
지난번 『문학의 숲에서 느리게 걷기』라는 제목의 비평집을 펴낸 후, 8년 만에 느리게 비평집을 묶게 되었다. 그러나 느린 걸음에서 얻은 소득이 있다면, 문학의 위기를 극복하는 방법이란 문학이 죽음의 조건을 외면하지 않으면서 위엄 있게 죽음을 준비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쉽게 살길을 찾기보다 냉정하게 죽음을 받아들이는 태도는 체념이나 절망이라고 말할 수 없다. 몸은 쇠약했어도 정신은 더욱 투명해진 문학이 꼿꼿한 자세로 자기의 설 자리와 갈 길을 의식하고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는 모습이야말로 우리에게는 큰 희망일 것이기 때문이다. 이 비평집은 혼돈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작가들과 함께한 발걸음의 기록이다.
2011년 여름, 관악산 연구실을 떠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