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서는 약 30억의 인류가 신봉하는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가 공통으로 존숭하는 경전이다. 구약성서가 특정종교집단이 신봉하는 경전이라는 데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으나 구약성경은 사실 종교문서로 폄하되고 환원되기에는 아까운 인류의 고전이기도 하다. 신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호메로스의 <일리아드>나 <오딧세이>가 고전이듯이, 신의 계시에 의해 자신의 철학을 개진한다고 주장한 파르메니데스나 소크라테스의 철학이 고전이듯이, 이스라엘의 민족수호신 야웨의 맹활약이 돋보이는 구약성서 또한 고전이다. 역사 속에 등장해 주인공 역할을 한 야웨 하나님이라는 존재 때문에, 구약성서를 인류에게 보편적인 교양과 정신적 자양분을 제공하는 고전의 자리에서 배제하는 것은 부당한 일이다. 구약성서 전체에 걸쳐서 이스라엘의 수호신으로 자임하는 야웨 하나님은 언뜻 보기에는 이스라엘을 편애하고 이스라엘의 대적으로 맞서는 이방인들에게 엄청 가혹한 부족신(tribal god)처럼 보인다. 그런데 이런 이해는 지극히 피상적인 인상비평일 뿐, 구약성서 본문 어디에서도 지지받기 힘든 오도된 통설이다. 구약성서의 신, 야웨 하나님은 철저하게 체제전복적이고 권력비판적이고 약자옹호적인 하나님이기 때문이다. 구약성서 39권 전체에 걸쳐서 이스라엘의 민족주의적이고 자기복무적인 이데올로기를 지지하는 구절은 단 한 구절도 없다. 구약성서의 ‘이스라엘’은 특정한 민족의 이름이지만 실상은 이 지상의 절대적 압제자들이나 강자에게 삶의 터전을 빼앗겨 안전한 보금자리를 찾는 난민을 대표하는 자이며, 안식도 빼앗긴 채 강제노동을 강요당하는 ‘노예’를 대표한다. 구약성서를 산출한 이스라엘의 조상은 난민과 노예였으며, 구약성서 전체는 삶과 문명의 벼랑 끝에 추방된 난민과 노예와 친히 언약을 맺으셔서, 역사의 중심무대를 장악한 압제자들과 요새화된 성읍의 지배자들을 무찌르시고 해체하시는 체제전복적인 하나님을 내세운다.
이 책은 종교적 교리가 포장하기 이전의 구약성서 본문 안에 밝히 드러나는 이 야생적이고 원시적이고 순수한 야웨의 민낯을 드러냄으로써 구약성서가 어떤 점에서 인류의 고전이 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려고 한다. 이 책은 구약성서의 개별 책의 중심주제들을 개관함으로써, 각각의 책이 어떤 점에서 인류의 고전으로 읽힐 수 있는가를 다루며, 마지막 두 장에서는 인문고전으로 구약성서를 읽을 수 있는 구체적인 예를 제시하려고 한다. 원래 본서는 숭실대학교 온라인 교양과목으로 개설되었다가 K-MOOC 강좌로 전환되어 지금도 숭실대학교 밖의 성경학도들에게 열린 강좌가 된 <인문고전으로서의 성서읽기-구약편>의 교재로 착상되었다. 본서는 먼저 이론적 서술문체로 된 강의안과 그것을 압축하여 구두로 풀어놓은 구어체 강의안으로 구분되어 있다. 모든 문어체 강의안의 끝에는 구어체 강의안이 첨부되어 있다. 일부 내용은 겹치지만 문어체로 된 강의안을 읽는 데 어려움을 느끼는 독자들은 구어체 강의안만 읽어도 본서 전체의 대지를 파악하는 데는 어려움이 없도록 편집되어 있다. 문어체로 된 강의안은 2006년에 숭실대 출판부에서 발간된 <현대인과 성서>(김회권 외 5인 공저)의 일부인 “구약성서”편을 바탕으로 대폭 수정하고 보완한 원고임을 밝힌다.
이 책은 최초의 기획의도에 따라 청년독자들을 염두에 둔 책이지만, 청년다운 호기심과 지적 열정을 가진 모든 세대의 정신적 청년독자들에게도 무리없이 읽힐 수 있을 것이다. 부디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이 인문고전으로서의 구약성서에 더욱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기를 바란다.
이 자리를 빌어 저자는 숭실대 온라인 교양강좌로 개설된 <인문고전으로서의 성서읽기-구약편>을 수강하고 많은 유익한 댓글과 피드백을 보내준 숭실대 학우들에게 사의를 표하고 싶다. 매주 토의와 퀴즈에 참여해 본 강좌가 학우들에게 의미있는 배움의 시간이 되도록 도와준 학우들은 본서를 쓸 수 있도록 용기를 준 선한 자극이 되었다. 이 강좌의 조교로 봉사해준 김현수, 김성남 두 조교에게도 심심한 감사를 표하고자 한다. 그들은 수백명이 넘는 학우들과의 원활한 소통을 통해 적시의 도움을 제공함으로써 본 강좌가 숭실학우들에게 사랑받는 강좌로 자리잡는 데 기여했다.
마지막으로 본서의 기획을 제안해 주신 박영사 정성혁 선생님과 책편집 실무를 총괄해 섬겨주신 김민조 선생님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김민조 선생님의 신속하고 꼼꼼한 교정과 편집작업으로 본서가 이번 가을학기부터 교재로 사용될 수 있었다. 항상 그렇듯이 나의 아내 정선희는 온 정성을 다 바쳐 문장 하나 하나를 정독하여 교정하며, 크고 작은 오류들을 바로잡아 주었다. 초교부터 마지막까지 저자교정 단계의 고단한 원고검토를 즐겁게 감당해준 실실한 동역자이자 친구인 아내 정선희에게 심심한 감사를 드린다.
2021년 9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