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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지호남인본명은 육린(毓麟)이며 후에 수인(守仁)으로 고쳤다. 호는 숙임(叔壬)이고, 자는 독생(篤生)인데 또 삼호유민(三戶遺民)이라 부르기도 하였다. 호남 장사(長沙)에서 태어나 광서 23년(1897)에 국자감 학생이 되었다. 무술변법시기에는 <상학보(湘學報)> 시무(時務)란의 편집을 맡았으며, 동시에 호남시무학당(湖南時務學堂)의 교사를 역임하기도 하였다. 1902년 일본에 유학하여 굉문학원(宏文學院)과 와세다 대학에서 수학하였고, 같은 해에 호남 출신 일본 유학생들과 함께 <유학역편(遊學譯編)>을 편찬하였으며, 동시에 <신호남>을 발표하여 호남성의 독립을 고취하였다. 1903년부터는 혁명 활동에 참여하였으며, 1906년에는 상해에서 <신주일보(神州日報)>를 발행하여 주편을 맡았다. 1907년 영국에 유학하였다가 1911년 광주봉기의 실패 이후 시국을 비관하여 자살로 생을 마감하였다.
대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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