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인학은 1934년, 우리나라가 일제의 압박에 시달리던 때 태어났다.
왜정 때, 그의 아버지는 지방 도시에서 인쇄업을 했다. 독립운동이 한창인 그 무렵 필화 문서 인쇄 건으로 체포령이 내리자 아버지는 당시 만주로 중국으로 몽고 등지로 피신을 다녔고, 따라서 인쇄소도 문을 닫았다. 그는 어려운 환경에서 학교당국의 배려로 학업을 계속할 수 있었다.
1950년 6·25 전쟁이 일어나자 그는 학도병으로 현지입대가 되어 가평을 거쳐 화천으로 가게 되었다. 그 곳에서 중공군의 공격을 받아 아군은 부득불 원주까지 후퇴를 하게 되었다. 이때 보고 겪은 경험을 살려 훗날 장편동화를 썼는데 이것이 전쟁동화로서는 첫 시도였다. 마해송 선생은 이것을 읽고 ≪벌판을 달리는 아이≫의 머리말까지 써 주었다. 그의 데뷔작은 1959년 ≪노래하는 꽃동산≫이다.
어느 날, 최인학은 박홍근 선생의 엽서 한 장을 받았다. 선생은 책을 보고 작품이 좋다며 남산 방송국으로 그를 불렀다. 선생은 작품을 써 오라고 하면서 ≪카톨릭 소년≫, ≪새벗≫ 등에 추천해 주었고, 그로부터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작품을 쓰기 시작하면서 아동문학에 더욱 심취했다. 이원수, 박홍근, 김영일, 임인수, 장수철, 박화목, 김요섭 선생들과 자주 만나 동화의 본질에 대해 사사 받았고, 이러한 과정이 작가로 하여금 동화를 한층 연구하는 데 동력이 되어 주었다. 그 결과 1968년 경희대학교에서 <童話의 特質과 발달과정 硏究>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이 논문은 아동문학연구로서는 최초의 학위논문이라고 한다.
동경교육대학(지금은 쓰쿠바대학이 되었음)에서 민담을 본격적으로 연구했다. 그 결과 1975년에 <한국 민담 연구와 유형>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감악골의 하루>로 박홍근아동문학상, ≪범식이와 검둥이 아이들≫로 이주홍아동문학상, 제1회 월산민속학술(저술)상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