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코태생으로, 제노 후바이와 후베르만을 사사하였고, 19세의 나이에 푸르트벵글러가 이끄는 베를린 필의 최연소 악장으로 임명된 천재 바이올리니스트이다.
2차 대전 이후에는 발터 기제킹, 횔셔등과 함께 트리오 연주를 즐겼으며, 바이올린 레퍼토리는 기제킹, 에디트 파르나디와 듀엣으로 활동하였다.
예술적으로 예민하고, 강한 소신의 소유자로, 1940년대 후반, 카라얀과 리허설 도중 음악 해석의 문제로 충돌하여, 리허설에서 박차고 나간 이후, 다시는 카라얀과 만나지 않았다고 한다.
1940~50년대 전성기를 누리며, 당시에 아돌프 부시, 후베르만, 클라이슬러 등의 후계자로 평가받았고, ‘바이올린의 마놀레떼(스페인의 전설적인 투우사 이름)’라는 별명으로 불리웠다. 하지만 1960년대 초부터 정신적 문제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