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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여의(陳與義)북송과 남송의 교체기, 즉 북송이 금나라의 침략을 받아 망하고 남송이 그 뒤를 이은 시기를 살았다. 그는 북송 철종(哲宗) 원우(元祐) 5년(1090) 6월 낙양(洛陽)에서 출생했다. 휘종(徽宗) 대관(大觀) 원년(1107) 18세에 태학(太學)에 입학하고, 정화(政和) 3년(1113) 24세에 과거에 급제해 8월 개덕부 교수(開德府敎授)로 임명받으면서 관리 생활을 시작했다. 정화 8년(1118) 벽옹록(?雍錄)에 제수되었으며, 선화(宣和) 2년(1120) 모친상을 당해 여주(汝州)에 가서 지냈다. 선화 4년 다시 태학박사(太學博士)에 발탁된 이후, 비서성저작좌랑(秘書省著作佐郞), 부림랑(符林郞) 등의 관직을 역임했다. 선화 6년(1124), 진류(陳留) 주세(酒稅)로 좌천을 당했다. 다음 해 12월 금나라가 남침해 휘종이 흠종(欽宗)에게 양위하는 일이 벌어졌으며, 이듬해 정강(靖康) 원년(1126) 들어 진여의는 피난 생활을 시작하고 송나라(북송)는 결국 망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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