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2년 서울대 농대에 입학하여 학생운동에 잠시 참여했으나 군 제대 후 89년부터는 투쟁을 통한 사회운동 대신 '사이좋고 행복한 공동체마을 만들기'라는 하나의 관심에 몰두하게 되었다. 자신이 그리던 모습에 가까운 모델을 찾아 국내 여러 곳을 찾아다니던 중 야마기시즘을 접하게 된다.
야마기시즘은 매력적이었지만 한국의 사상을 기반으로 하는 공동체를 만들고 싶었던 그는, 1990년 지리산에서 뜻맞는 원불교 교무, 청년들과 함께 원불교 사상을 기반으로 한 생태공동체 만들기를 시도하였다.
그해 여름 미국에 있는 에미서리 생태영성공동체로 건너가 91년 말까지 머물며 자신이 그리던 성숙한 공동체의 삶을 흠뻑 맛보았다. 91년 말 내면의 부름을 느껴 야마기시회를 통해 평생의 일을 하기로 정하고 미국에서 나왔다. 92년 1월 한국의 야마기시 공동체에 참여하여 약 18년간 활동하다가 2008년 야마기시회에서 할 일을 마쳤다고 생각하고 그곳을 떠나 강화도에 옮겨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