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가이자 언론인이며 독립운동가다. 본관은 고령高靈으로 1880년 충청남도에서 출생했다. 호는 단재丹齋, 가명은 유맹원劉孟源이다. 어려서부터 조부에게 한학을 배웠으며 18세 때 성균관에 입학하여 26세가 되던 1905년 성균관박사가 되었다.
그해 《황성신문》의 기자가 되었고, 이듬해 《대한매일신보》의 주필이 되었다. 1907년 항일비밀결사인 신민회에 참여했고 시론, 논설 등을 쓰며 애국계몽운동과 항일언론운동을 펼쳤다. 또한 〈독사신론〉을 포함한 역사관계 논문과 다수의 영웅전을 써서 민족의식과 독립정신 고취에도 힘썼다. 1910년 신민회 동지들과 중국 칭다오로 망명한 후 민족교육과 항일운동에 전념하는 한편 답사와 저술 등을 통해 상고사 연구에 힘썼다. 1919년 상해임시정부 수립에 참여했으며, 1927년 신간회 발기인으로 활약했다. 1928년 4월 무정부주의동방연맹대회에 참석한 그는 5월, 타이완에서 체포되어 다롄으로 이송되었다. 1930년 10년형을 선고받고 뤼순감옥으로 이감되었으며, 1936년 옥중에서 뇌일혈로 순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