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는 내 안에 뿌리내린 독이었다. 삼킬 수도 없고 뱉을 수도 없는 독. 어설피 삼키기에는 내가 동조할 수 없는 것이 너무 많았고, 섣불리 내뱉기에는 이미 내 안에 넓게 퍼져 있었다. 사람들은 내게 말했다. 삼키거나 뱉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그러나 나는 어느 쪽도 선택하지 않았다. 단지 오랫동안 물고 있었을 뿐이다. 창작집을 묶어내는 이제 나는 선택할 필요가 없어졌다. 오랫동안 물고 있는 사이 이미 그것은 내 안에서 녹아버렸기 때문이다.
... 책을 묶어내면서 문학 앞에서 새롭게 옷깃을 여민다. 여미는 옷깃 속에는 오래된 우을증과 환멸과 애끓는 열정, 그 모든 것에 대한 긍정이 깃들어 있다. 이제 골방에서 나와 세상을 만나고 싶다. 오랫동안 내게 타자였던 그들의 눈빛을 읽어내고 그들의 말을 받아 적어보고 싶다. 그리고 점차로 '나'를 지워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