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4년 스코틀랜드 폴커크에서 태어났다. 1910년 그의 가족은 캐나다로
이주해 위니펙에 정착했다.
어렸을 때 다리를 다쳐 골수염에 걸렸지만 그의 병을 연구과제로
삼고 싶어 하는 의사 덕분에 치료받을 수 있었다. 이 사건은 더글러스가 누구나 치료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공공의료를 생각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1924년 더글러스는 브랜던대학에 입학했으며 여기서 사회복음주의운동의 영향을 받았다. 그 후 그는 서스캐처원 주 웨이번의 칼바리침례교회 목사가 되었다. 대공황 와중에 웨이번에서 사회주의 활동을 시작했으며 사회주의 정당인 CCF(Co-operative Commonwealth Federation)에 가입했다. 1935년 연방선거에서는 캐나다 의원으로 선출되기도 했다. 특히 1944년 선거에서는 CCF당이 53석 가운데 47석을 차지해 더글러스는 서스캐처원 주의 주지사가 되었다. 이는 캐나다에서만이 아니라 북미 지역을 통틀어 최초의 민주사회주의 정부였다. 그는 재임 기간 중 정부 소유의 발전회사와 최초의 공공자동차 보험회사를 세웠으며, 공공서비스 노동자들의 노조를 허용하는 정책을 펼쳤다.
그중에서도 더글러스가 가장 중요하게 여긴 정책은 공공의료정책이었다. 1961년 도입된 전 주민 의료보장제도는 많은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지만 우드로 로이드(Woodrow Lloyd)에 의해 계승되었으며, 1958년 선출된 캐나다 수상 존 디펜베이커(John Diefenbaker)는 다른 지방정부에서도 이 정책을 선택할 경우 50퍼센트의 연방정부 보조금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1964년 대법원은 서스캐처원 주의 공공의료정책을 국가 전체로 확대할 것을 권장했으며, 1966년
부터 연방정부와 지방정부가 각각 절반씩 비용을 부담하는 공공의료정책이 마련되었다.
토미 더글러스는 2004년 CBS(캐나디언 방송회사)에서 전국적으로 공모한 가장 위대한 캐나다인으로 선정되었다. 사회주의 정치인이자 서스캐처원 주의 주지사로 1944년부터 1961년까지 재임했으며, 1961년부터는 신민주당의 당수로서 1971년까지 활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