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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김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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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8월 <윤보선과 1970년대 한국정치>

김명구

2003년, 연세대학교에서 신학박사(Ph.D) 학위를 취득했고 서울장신대와 연세대학교 이승만연구원 교수였다. 감리교회 목사로 창천교회 소속이기도 하다. 현재 서울YMCA병설 월남시민문화연구소 소장, 해위민주주의연구원과 종로목요서평 운영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월남 이상재의 기독교 사회운동과 사상>을 시작으로, <서울장신 50년사>, <창천교회 100년사>(공저), <해위 윤보선-생애와 사상>, <서울YMCA운동사 100-110>, <연세대학교 신과대학 100년사>(공저), <복음, 성령, 교회-재한선교사들 연구>, <한국기독교사 1>, <한국기독교사 2> 등 공저와 번역서를 포함해 20여 편의 책을 썼다.

여러 중요한 논문을 발표했고, 2011년에 저술한 <해위 윤보선-생애와 사상>은 문화체육관광부 우수학술도서(역사부분)에 선정되었다. 영국 에든버러대학(University of Edinburgh)은 2013년 그의 영어 논문 Nationalism, Religion and Democracy를 책으로 발간했다. 2019년 6월에는 에든버러대학 저널(University of Edinburgh Journal, No.1 Vol.49-Summer 2019)에 그의 논문 The Relationship Between Korea and Edinburgh with a focus on Yun Posun이 등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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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말

<공덕귀 : 생애와 사상> - 2022년 11월  더보기

이 책은 여성운동과 인권운동, 민주화운동 중심에 있던 공덕귀 여사의 생애와 사상을 기록한 평전이다. 필자가 <해위 윤보선, 생애와 사상>을 발간한 지 11년 만에 대한민국 제4대 대통령의 영부인인 공덕귀 여사의 평전이 만들어진 것이다. 공덕귀에 대한 관심은 <해위 윤보선, 생애와 사상>을 집필하면서부터이다. 그것은 공덕귀가 신학자였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이 책은 공덕귀의 신학사상과 구체적 활동에 맞추어졌다. 공덕귀의 사상을 깊이 파헤칠 수 있었고, 아울러 윤보선의 정치철학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도 알게 되었다. 여느 부부와 같이 두 사람은 서로 사상적 교류를 했다. 집필을 시작할 때, 공덕귀의 활동이 어디에서 비롯되었고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알고 싶었다. 또한 어떤 방식으로 어떻게 전개되었는지도 살펴보려 했다. 공덕귀를 알기 위해서 그의 삶 전체를 조명해야 했고, 그 삶을 꿰뚫고 지나가는 사상을 찾아내야 했다. 이를 위해 먼저 출생지인 통영과 그의 가계, 시대 상황을 살펴보았다. 그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쳤던 호주장로교회에 대해서도 연구했다. 당시의 일본 지식사회와 신학계의 흐름을 살펴보았고, 삶의 전반부 활동의 무대가 되는, 김천 황금동교회와 조선신학교에 대해서도 알아보았다. 해위 윤보선과의 결혼과 아산의 해평 윤씨 문중의 전통이 공덕귀에게 어떻게 사상적으로 영향을 끼쳤는지, 아울러 공덕귀의 신학 사상이 해위 윤보선의 정치철학에 어떻게 전달되고 각인되었는지도 알고 싶었다. 이후에 벌였던 여성운동과 인권운동, 민주화운동의 내용과 동력(動力)이 무엇인지도 확인하고 싶었다. 집필을 통해 호주장로교회의 신학적 주제인, 영적구원의 영역과 송창근 등 공덕귀에게 영향을 끼쳤던 인물들의 신학, 공덕귀가 유학했던 당시의 일본 대학사회의 흐름을 알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일제 강점기의 사상도 일방적으로 하나가 아니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메이지시대’(明治時代)와 ‘다이쇼시대’(大正時代), ‘쇼와시대’(昭和時代)의 사상적 흐름이 어떻게 달랐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그 강압의 시대에 한국 지식인들의 고뇌와 사상적 대응이 어떠했는지도 알게 되었다. 해위와 결혼을 하고 시대에 저항을 하며 공덕귀의 사상이 더욱 확장되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곧 영적구원과 사회구원에 머물러 있던 신학사상의 폭이 국가구원의 영역과 기독교민주주의 의식까지 넓혀진 것을 확인한 것이다. 공덕귀의 고백처럼 그 활동은 영부인의 자리에서 내려오면서 빛이 났다. 안동교회의 여전도회에만 머물지 않았고 그 영역을 예장 여전도회 서울연합회, 한국교회여성연합회 등으로 넓혔다. 도시산업선교회와 관계를 맺었고 산업선교 현장을 찾아다녔다. 여성 노동자 생존권 투쟁 지원, 빈민선교 지원 운동, 기생관광 반대 운동 등에 나섰고 원폭 피해자 돕기 운동을 비롯해 재일?재미교포를 위한 민족차별 저항운동 등에도 적극 힘을 썼다. 노동자들에 관한 관심이 “빨갱이 짓”으로 비치던 그때, 공덕귀는 “사회적 약자를 누가 보호할 것인가”라는 물음에, “기독자가 아니면 안 된다”고 응답했다. 그리고 모두가 애써 외면하던 문제에 서슴없이 나섰다. 민청학련사건에 연루되어 구속자 가족들을 위해 ‘구속자가족협의회’를 만들고 ‘목요기도회’도 주도했다. 유신정부가 저지르는 만행을 과감히 고발했고 구속자 석방을 앞장서서 부르짖었다. ‘양심범’ 가족들의 우산 역할을 했고 보호자가 되었으며 함께했다. 집필을 통해 공덕귀의 삶을 움직였던 것은 ‘기독교 신앙’과 ‘신학’이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관통하는 주제가 영혼구원이라는, 영적 영역의 바탕 아래 이루어지는, 이 땅에서도 이루어져야 하는 ‘하나님의 나라’였다는 것도 확인했다. 공덕귀는 이런 신학적 에너지를 가지고 여성운동, 인권운동, 민주화운동에 나선 것이고 불의한 시대에 저항을 할 수 있었다. 그동안 여러 책을 집필했지만, 이번 책에서도 쉽지 않다는 독백을 했다. 쉬운 집필은 없는 것이다. 아울러 신앙의 거목을 조명하는 일이 한 사람의 의견이나 일방적 접근만으로 완전히 충족될 수 없다는 고백을 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교회사를 전공한 신학자요 역사가이기는 하지만, 한 사람의 해석으로 공덕귀를 완전히 판독할 수는 없다. 앞으로 많은 학자가 다양한 시각에서 더욱 광활히 연구하고, 그래서 공덕귀의 생애와 사상의 폭이 넓혀지기를 기대한다. 이 책에 전념할 수 있도록 여러 지원을 아끼지 않으셨던 해위 윤보선 대통령의 장남이신 안동교회의 윤상구 장로님께 감사한다. 기도해주시고 격려를 아끼지 않으신 한국영성협회 이규학 감독님과 일본의 자료를 열심히 찾아 준 일본 영광교회(?光??) 소대섭 목사님께 고마움을 표한다. 깊은 학문적 성찰로 격려해주신 윤보선민주주의연구원의 김학준 초대 원장님, 그리고 김용호 원장님과 박찬욱 교수님 등 운영위원들께도 감사를 드린다. 집필 장소를 배려해 주신 서울YMCA 김인복 이사장님과 조규태 회장님께도 감사를 드리지 않을 수 없다. 함재봉 박사를 비롯한 서울YMCA 서평모임의 연구위원들의 학문적 제안은 이 책을 집필하는 데 적지 않은 도움이 되었다. 공덕귀 여사의 교회학교 제자로, 얼마전 소천하신 신당중앙교회 원로목사셨던 허재철 목사님은 김천 황금동교회시절을 소상히 알려주셨다. 자료수집과 학문적 의견을 해 준 김정회 박사와 김석수 박사, 교정을 맡아주신 김일환 박사, 서울장신대 박사과정에 있는 이동일 목사와 이준구 목사, 박현준 목사 등 제자들께도 감사를 전한다. 이 책의 출간을 허락해 주신 박영사 안종만 회장님께도 인사를 드린다. 끝으로, 가장 고마움을 표해야 하는 사람은 아내이다. 지금의 나의 모습과 위치에 이르기까지 묵묵히 내조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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