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천대학교 교수(미디어 커뮤니케이션), 전 동아일보 도쿄특파원, 54만 부 판매 기록의 《남산의 부장들》 저자. 일본 게이오대 법학박사(미디어 저널리즘 전공), 전 방송통신위원회 부위원장(차관급).
1977년 고려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동아일보 기자로 30년을 재직했다. 주로 정치부에서 국회, 정당, 청와대, 외무부를 출입했다. 현장 기자로서 금단의 성역이었던 중앙정보부(국가안전기획부를 거쳐 현재 국가정보원)를 심층 해부해보려는 열망에 불타, 1990년 김중배 편집국장(나중에 한겨레신문 사장, MBC 사장)에게 연재를 건의하였다. 그렇게 시작된 ‘남산의 부장들’은 압력과 회유, 협박 속에서 장장 2년 2개월 동안 연재되어, 장안의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이어 단행본 《남산의 부장들》로 출간돼 한일 양국에서 54만 부가 팔리는 대반향을 몰고 왔다. 2012년 내용을 대폭 보완한 개정·증보판이 폴리티쿠스에서 나와 수만 부가 팔렸다. 2021년 중국어판도 대만에서 출간되었다.
저자는 1993년 평기자로서, 30대에 최연소 논설위원으로 발탁되었다. 한국기자상을 두 번 수상(1984, 1993년)했다. 문화부장, 사회부장을 거쳐 2002년부터 3년간 도쿄특파원 겸 지사장으로 주재하며 아사히신문 등에 칼럼을 썼다. 2004년 도쿄대 대학원(법학정치학연구과)에서 ‘정치와 보도’ 과목을 1년간 강의했다.
저서로 《남산의 부장들》(1992), 《슬픈 열도》(2006), 《법에 사는 사람들》(공저, 1984), 《목화꽃과 그 일본인》(2015), 번역서로 《화해와 내셔널리즘》(2007)이 있다.
사람들은 권력을 모른다
돌아보면 딱 30년 만이다.
박정희 시대 18년을 다룬 《남산의 부장들》 서문을 쓴 것이 1992년이다. 그리고 올해 2022년 대한민국의 제20대 대통령은 검사 윤석열이다. 제5공화국이라고 일컫는 ‘전두환 시대’(1980~88)의 국가안전기획부장(정보부장) 5명에 대해 탈고하고 머리말을 적기까지 30년이 걸린 셈이다.
그렇다고 《5공 남산의 부장들》을 쉬지 않고 준비했다는 의미는 아니다. 한동안 나는 박정희 시대 10명의 정보부장 역사를 기록한 것으로, 소임이 끝났다고 생각하며 잊고 지냈다. 그렇지만 습관처럼 자료를 모으고, 인터뷰하고, 메모하기는 했다. 저널리스트의 어쩔 수 없는 관성이고 직업병이었을까. 그래도 새 책을 써야 하나, 말아야 하나, 망설임은 신문사를 떠나 대학 강단에 선 16년 동안 계속되었다. 그렇게 주저하는 동안에도, 첫 책은 서점과 전자출판에서 살아남았다. 또 픽션 영화로 가공되어, 코로나 상황에서도 500만에 이르는 관객을 모았다. 독자, 관객의 관심과 질책으로 생긴 빚은 나에게 의무가 되었다.
윤석열 정치도 국가정보원 댓글 수사에서 시작됐다
그 30년, 강산이 세 번이나 바뀌는 세월에, 우리는 무엇을 이루어 전진했고 또 한편으로 쳇바퀴 돌고 있는가? 한국 정치는 안기부 혹은 국가정보원으로부터 얼마나 자유로운가? 우연찮게도, 윤석열 검사의 이름이 뜨기 시작한 건 10년 전, 그가 원세훈 국가정보원의 여론 조작(댓글) 사건 수사팀장을 맡으면서부터다.
그만큼 우리 정치는 안기부(국정원)의 음습한 그늘에 맞닿아 있다.
그 전신(前身)인 중앙정보부는 악(惡)의 소굴이었다. 정치 공작과 정치자금 모금, 선거 조작, 이권 개입, 도청(盜聽), 미행, 납치, 고문(拷問)에다 밀수, 암살도 서슴지 않았다. 심지어 5공의 전두환 장군도 1980년 정보부장에 오르자, 과거의 월권 폐해를 없애고 완전히 새로운 조직으로 만들겠다고 큰소리쳤다.
그런 5공이 국가안전기획부로 이름을 바꾸고 법을 고쳤지만, 밀수와 암살만 빼고 고스란히 1970년대의 정보부를 답습했다. 5공은 야당을 탄압하기 위해 국가 예산으로 정치깡패를 고용하기도 했다. ‘보통사람의 시대’를 내건 6공화국 노태우 정권도 다를 바 없다. 6공 안기부는 정치 개입, 선거공작을 본분으로 여겼고, 그러다 선거운동 현장에서 요원이 신분증을 빼앗겨 망신도 당했다.
군부정권이 끝나고 문민(文民)정부 시대에는 달라졌는가?
김영삼 정권 때는 안기부의 김기섭 기조실장이 김현철의 정치자금을 숨겨주고 세탁한 혐의로 투옥된 바 있다. 김대중은 국정원으로 이름을 바꾸고 정보기관에 핍박당했던 지도자답게 탈각(脫殼)을 별렀지만 임동원, 신건 원장이 도청·감청 문제로 감옥에 갔다. 노무현 정부의 김만복 원장은 ‘선글라스 사건’에 이어 남북대화록을 흘리며 정치 곡예를 벌이다 스스로 사퇴했다. 이명박 정부의 원세훈은 여론 조작 등으로 감옥에 가서 2030년이나 되어야 출소할 것이라고 한다. 박근혜 정부 국정원의 남재준, 이병호, 이병기 세 국정원장은 특수활동비 상납으로 모두 감옥에 갔다. 그들에 대한 법적 단죄는 현재진행형이다.
뜬금없이 떠오르는 것은 ‘인수봉’이라는 시(정호승) 한 구절이다.
사람들은 사랑할 때 사랑을 모른다
사랑이 다 끝난 뒤에서야 문득
인수봉을 바라본다
그래서 생각해본다. 이 땅의 현대 정치사에서 정권을 뒷수발했던 정보부장(안기부장)들을 기록하면서, 인간과 권좌와 권력의 생리를 성찰해본다.
사람들은 자리에 있을 때 권력을 모른다
권력이 다 끝날 때에야 문득
정상(頂上)을 되돌아본다
권력은 멀쩡한 사람을 바보로 만든다. 영리한 지식인도, 힘센 장사도 한낱 부나방으로 만든다. 권력의 광기(狂氣)에 휘말려 인격과 생애의 자산을 날린다. 경제도 거품은 모르고, 주식도 상투는 모르는 것과 마찬가지일까. 그것이 인간 존재의 한계인 것인가? 이 책은 그러한 ‘설계 미스’ 같은 인간 존재, 그리고 권력과 ‘인간 본질’에 대한 탐구이다.
윤석열 정부의 출범에 즈음해, 그 실세 측근들은 5년 후, 2027년 5월을 쳐다보면서 일해나가면 답이 나오지 않을까. 길을 잃은 나그네는 북극성을 찾는다. 권력에는 하산(下山)의 그날이 북극성이다. 그날은 어김없이 온다. 그리고 예외 없이 역사의 벌판, 숨을 수 없는 황야에 선다. 다 끝날 무렵에 인수봉 정상을 바라보면 너무 늦고 허망하다. 이 책은 선대(先代)의 피눈물 흘린 역사에 관한, 바보들의 행진에 관한 2번째 보고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