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가 뭐길래?
영어처럼 많은 사람의 속을 태운 교과목도 없을 것이다.
대개의 교과목이라는 것이 학교를 졸업하고 나면, 어떤 특정 교과목을 전공으로 밥벌이를 하지 않는 한, 다시는 써먹을 일이 없는 게 보통이다. 그러나 영어는 그렇지 않다.
졸업하고 취직을 한 뒤에도, 평생을 쫓아다니며 들들 볶는 경우가 많다. 머리 희끗희끗해서도 새벽 혹은 퇴근 후에 영어 학원을 기웃거리는 경우가 흔한 게 우리의 현실이다.
이 같은 현상을 ‘영어의 과잉’이라고 할까, 아니면 ‘영어의 횡포’라고 해야 할까.
사정이 이러니 학부모 입장에서야 아이들 장래를 위해 일찌감치 영어에 ‘올 인’ 하지 않을 수 없다. 영어 유치원이나 조기유학을 보내기 위한 과열 현상이 한쪽에선 분명히 있고, 그럴 형편이 못되면 동네 영어 학원이라도 보내야 부모 마음은 조금 위안을 얻는다. 수입이 최저 생계비 근처에 맴도는 학부모라도 영어학습지 정도는 아이에게 쥐어줘야 ‘도리’를 다한듯한 사회 분위기가 엄연히 존재한다. 이로 인한 가정 경제의 부담은 결코 적지 않다.
그래서 영어를 놓고, ‘잉글리시 디바이드(English Divide)’니 ‘영어 이데올로기’, ‘영어 식민주의’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한지도 오래다.
의사소통을 위해, 혹은 영어로 된 보다 전문적인 서적을 읽기 위한 ‘수단’으로 배우는 영어가, 어떻게 계급 격차를 만들어 내고, 또 한 사회의 이데올로기가 되어 휩쓸리고, 자발적인 영어의 식민주의라는 주장까지 도출될 수 있을까? 오늘 날 ‘문제아 영어’를 낳은 기원은 어디일까? 수단인 영어가 언제, 어떻게 해서 목적이 되고, ‘문제아’로 전락했을까?
좀 더 근본적으로 생각해 보면, ‘도대체 누가 언제 어떻게 우리나라에 영어를 들여 온 거야?’하는 의문이 일어나지 않을 수 없다.
그럼 맨 처음에 영어를 배운 사람들은 어떻게 배웠을까? 영어를 처음 배운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었을까? 무엇으로 배웠을까?···.
별 생각 없이 지긋지긋하고 달달 볶는 영어에 수십 년 동안 혀를 내두르고 시달려 왔지만, 한발자국 더 나가 생각해 보면 영어에 대해 궁금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모든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나도 아무 생각 없이 영어와 더불어 지내왔다. 그런데 몇 년 전 옛날 신문을 열심히 들여다 볼 기회가 있었다. 당시 살펴 본 일제하 신문 지면에는 웬 영어 책 광고와 영어 통신강의 광고가 그렇게 많은지 깜짝 놀랐다. 결국에는 우리말까지 말살시킨 일제 치하에서, 영어 공부를 부추기는 광고들이 그렇게 많은 것은 ‘도대체 영어가 뭐길래?’하는 의문을 품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그래서 영어가 우리나라에 언제 어떻게 들어오게 되고, 어떻게 퍼져 나갔는지 하나하나 찾아가다 보니, 그동안 전혀 몰랐던 재미있는 사실들이 너무 많았다. 특히 구글 프로젝트에 의해 디지털화된 주옥같은 수많은 원전 자료들은, 10여 년 전만 해도 접근하기가 쉽지 않은 책들이었다. 이를 안방에 앉아서 편하게 열람해 볼 수 있었으니, 참 좋은 세상이다. 책을 읽는 분들이 ‘아, 이런 책까지 공짜로 읽을 수 있네’하는 정보를 얻는 것만으로도 짭짤한 부수입을 올린 셈이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영어를 배운 사람들은 한국 근대사 최고의 선각자들로, 그들의 행적은 우리 관심의 대상이 아닐 수 없다. 중국과 그 변방으로 구성된 사대(事大)의 폐쇄된 국제정치 질서와 새로운 만국공법 질서라는 전혀 이질적인 질서를 연결하는 핵심고리였다. 수백 년 지속된 안정되고 탄탄한 질서가 순식간에 무너지기 시작했을 때, 이들은 그 누구보다 발 빠르게 서양을 이해하는 수단인 영어를 배워 권력의 전면에 등장했었다. 이들이 보여준 영어 습득과 권력의 강한 양의 상관관계는, 수많은 사람들을 영어를 배우도록 내몰았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일제에 합병됐고, 영어를 처음 배워 한국 근대사를 좌지우지 했던 많은 사람들은 친일로 돌아섰다. 책에는 담아낼 수 없었지만, 이들의 ‘선택’은 과연 어디서 온 것일까? 이완용이란 큰 매국노를 만들어 몰매질함으로써, 작은 매국노들은 모두 면죄부를 받아도 옳은가? ····, 수많은 상념들은 이들 인물들에 대한 전면 재검토의 욕망을 불러일으키게 만들기도 했다.
조선에 처음 뿌려진 영어의 씨앗은 일제하에선 전혀 새로운 국면을 맞는다. 구체제의 양반계급제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입학시험을 비롯한 각종 시험제도에 의해 관리가 충원되고, 영어가 각종 시험의 필수가 된 것이다.
말하자면 일제하에서 영어는 출세의 첫 관문인 셈이었다. 영어는 다시 한 번 사람들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였다. ‘학교 안’에서 뿐 아니라 ‘학교 밖’에서도 수많은 사람들이 영어에 매달리는 진기한 현상이 벌어졌다.
숫자로 표시된 영어의 ‘성적’에 매달리다 보니, 실제 영어의 기능을 향상시키기 보다는, ‘영어 성적’을 위한 매우 난해한 독해나 문법, 어휘 문제에 매달리는 경향이 지나치게 높았다. 이는 이후 오늘날까지도 소위 ‘영어 문제’로 계속 반복되어 지적되는 문제다. 따라서 ‘영어문제’의 기원을 주마간산 격이나마 더듬어 볼 수도 있었다.
이 책은 ‘한국 해양사’, ‘한중일 관계사’, ‘한미 외교사’, ‘영어 교육사’ 아니면 포괄적으로 ‘한국 근현대사’로 읽힐 수 도 있다. 영어를 축(軸)으로 다층적으로 바라보려 한 시도의 결과였으나 모자람을 느낀다. 널리 양해를 구하며, 더 정진하리라 다짐한다.
2011년 10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