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인도를 대표하는 좌파 정치인. 케랄라 주 총리를 두 차례 역임했다. 조국의 독립, 카스트 차별 철폐, 토지개혁, 문맹 타파, 경제발전에 일생을 바쳤으며, 민중을 향한 한결같은 헌신과 청렴한 삶, 높은 학식과 덕망으로 좌우를 넘어 두루 존경받았다.
1909년 최상층 카스트인 브라만 가문에서 태어났지만, 어린 시절부터 카스트 차별주의 및 보수주의와 맞서 싸웠다. 1931년 독립 투쟁에 뛰어들어 사티아그라하운동을 벌이다 투옥되었으며, 1934년 인도국민회의 전인도공동서기가 되는 등 일찍부터 두각을 나타냈다.
하지만 간디주의 및 국민회의와 결별하고, 모두가 평등한 세상을 향한 혁명의 길을 걸었다. 인도공산당(CPI) 중앙위원과 정치국원을 거쳐 총서기를 지냈으며, 1964년 인도마르크스주의공산당(CPIM)으로 당적을 옮겨서도 오랫동안 중앙위원과 정치국원, 총서기를 역임했다. 그는 인도를 대표하는 좌파 이론가 겸 저널리스트로도 명성이 높았다.
1939년 마드라스 주 의회 의원을 지낸 바 있는 그는 1957년 인도공산당을 이끌고 나선 케랄라 주 선거에서 승리해 초대 주 총리로 선출되었다. 이는 세계 최초로 민주 선거에 의해 공산당이 집권한 사례이자, 인도 독립 후 처음으로 비(非)국민회의가 집권한 사례였다. 하지만 케랄라 공산당 정부를 눈엣가시로 여겨 헌법 독소조항인 356조를 발동한 중앙정부에 의해 2년 만에 강제 해산되었다.
그러나 1967년 선거에서 무슬림연맹 등 7개 정당 연합으로 집권해 다시 주 총리를 역임했다. 집권하지 못했을 때는 케랄라 주 의회 야당 대표로 활동했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아마르티아 센은 그가 수행한 케랄라 모델을 개발경제의 모범으로 평가하기도 했다.
명문가 브라만 출신으로서는 드물게도 모든 기득권을 버리고 무산계급을 위해 일생을 바친 데서 보듯, 그의 삶은 희생과 소박함 그 자체였다. 그는 감옥과 의회, 지하활동과 주 총리를 오가며 반세기 넘게 정치가, 혁명가, 이론가의 길을 걸은 인도 진보정치의 거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