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곡가이기도 하며, 독일 단치히(지금의 그다니스크)에서 출생했다. 저명한 오르간 제작자의 집안에서 자란 슈리히트는 1901년부터 1903년까지 베를린 음악대학에서 훔퍼팅크 등에게서 배운 다음 라이프치히에서 막스 레거를 사사했다.
마인츠의 극장에 수습으로 들어가 음악의 실제 수업을 쌓은 뒤에 버트 크로이츠나허를 비롯한 도르트문트, 고슬라르, 츠비카우 등 독일의 지방 도시 극장의 악장을 거쳐 1909년부터 프랑크푸르트 암마인의 오케스트라 협회의 지휘자가 되었다. 1911년에 비스바덴으로 옮겨 그 곳 극장의 제1지휘자로 취임, 마침내 비스바덴 시의 음악 총감독이 되었고 그 자리를 1944년까지 지켰다. 그 사이 슈리히트는 현대 음악제의 정기적인 개최를 실현시켰고, 그 곳에서 새로운 음악을 지휘, 그 소개에 힘썼고 특히 독일에 드뷔시, 델리우스, 라벨, 쇤베르크, 스트라빈스키 등의 작곡가들의 음악의 추진자가 되었다. 물론 비스바덴에서만 지휘 활동을 계속한 것은 아니며 빈과 베를린을 비롯한 주요 음악의 도시에서 객원 지휘도 했다. 그 중에서도 빈 필하모니는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었으며, 네덜란드의 스헤베닌게에서는 매년 여름 열리는 연주회를 수년 동안에 걸쳐 지휘, 그 공적으로 네덜란드 정부로부터 1938년에 훈장을 받기도 했다.
슈리히트는 1944년부터는 스위스로 옮겨가 살면서 고정된 지휘자의 자리를 갖지는 못했으나 각지로 돌아다니면서 객원 지휘자로서 적극적인 활동을 벌였다. 그러나 1967년 1월 7일에 스위스의 레만 호반에서 타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