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적인 언어, 거침없는 표현, 다양한 스펙트럼의 임은정 작가. 소설가. 1975년 경북 김천 출생이다. 영어교육을 전공했지만 우연한 기회에 방송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오랫동안 방송작가 생활을 하다 방송작가로서의 삶에 지칠 때 쯤 자신의 작품을 통해 세상과 소통 하고 싶어 글을 쓰겠다고 결심했다. 2012년 현재 조용한 도시에서 집필 활동을 하고 있다.
2010년 첫 번째 장편소설 『1미터』너와 내가 닿을 수 없는 거리로 데뷔했다. 『1미터』는 뇌사판정을 받고 23년간 침대에 누워 있었지만 사실은 의식을 잃지 않고 있었던 것으로 밝혀져 안락사 논쟁에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된 벨기에 남성 롬 하우번의 이야기를 모티프로 시작했다. 갑작스런 사고로 식물인간이 되면서 어쩌면 1,000년 후 인간으로 진화해 버린 두 남녀. 몸은 있으나 움직일 수 없고, 입은 있으나 말할 수 없고, 가슴은 있으나 가 닿을 수 없는 두 남녀의 애절한 사랑이야기와 행복요양원에서 삶과 죽음의 경계를 오가는 사람들의 이야기. 사랑하지만 진심으로 사랑하지 않는 살아 있지만 하루를 무의미하게 보내는 사람들에게 진정한 사랑과 삶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처음 정원섭 목사님을 만나러 갔을 때, 몇 마디를 나눈 그가 나에게 던진 한마디는 이거였다.
“너무 물러, 법정 얘기는 못 쓰겠어. 내 얘기나 쓰게.”
무죄를 입증하기 위해 법정에서 싸웠던 과정을 취재하러 갔던 나는 몇 시간도 지나지 않아 결국 그의 파란만장한 인생에 넋이 나가 있었다.
도무지 사실이라고 믿기지 않았다. 나는 한 남자의 인생을 관통해가며 지나가는 한국 현대사의 기록이 문신 자국처럼 선명하게 남아있는 걸 목격했고, 이미 사실 관계를 따지며 법정에서 다투는 그런 얘기는 관심에서조차 멀어졌다.
며칠 흥분해서 얘기를 곱씹었지만, 결국 며칠 뒤 나는 목사님께 전화를 걸었다. 그 거대한 주물의 양은 감히 어린 조무래기가 흙장난을 하며 쪼물딱거릴 만한 분량의 재료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 이후로 나는 재심이 개시되어도 다시 무죄 확정을 위해 싸우는 늙은 한 남자의 피나는 결투를 멀리서 죄인이 된 것처럼 지켜봐야 했다.
그리고 마침내 무죄가 확정되던 날, 정원섭 목사님은 선물로 이 이야기를 나에게 안겼다.
한사코 손사래를 치는 나에게 목사님은 얘기했다.
“임작가, 이 얘기를 써. 나는 자네가 쓴 내 얘기를 듣고 싶네.”
정원섭 목사님은 그후 자신의 이야기를 책에 담을 수 있도록 허락해 주셨고, 이후 이야기와의 사투가 시작됐다. 나는 이야기가 아니라, 어떤 형식으로 이 거대한 분량의 얘기를 담아 낼 수 있을까 고민했다. 그리고 한 남자의 가슴에 남은 절절한 사랑 얘기를 담기로 하고, 실화를 바탕으로 재구성해 나갔다.
목사님의 이야기를 써가면서 나는 한 개인의 삶이 폭력과 권위 앞에 얼마나 무기력하게 무너지는지 똑똑히 목격했다. 하지만 동시에, 40여년 동안 진실을 찾아 묵묵히 순례자처럼 걸어온 그의 인생이 결국 거대한 역사의 흐름을 바꿔놓는 기적을 목격하기도 했다.
정원섭 목사님은 2011년 11월 27일 대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된 이후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구속돼 있는 사람들을 위해 봉사를 하고 있다. 그는 정의란 혹은 자신의 신념을 지키는 것이란 것이 결코 한 순간의 감정이 아닌 처절한 희생을 통해 숭고하게 이뤄지는 것이라는 것을 보여준 진정한 영웅이었다.
비바람 치고 짐승에 뜯기던 외로운 시간을 걸어 온 그에게 이 인생의 기록을 바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