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비밀이 된다
사람은 살면서 책이 된다
찾아가기 힘든 無名의 골목 어귀
세상을 잊은 고요한 도서관
그 깊고 깊은 서가에 꽂힌
표제 없는 책이 된다
사람은 살면서 그림이 된다
어린 시절 입은 상처가
누런 송아지 커다란 눈망울에 비치고
청춘의 꿈이 팽팽한 실오라기 한 줄
그 인력에 갇힌 가오리연으로 펄럭대는
까닭을 짐작 못 할 난해한 그림이 된다
사람은 살면서 숲이 된다
그 누구도 닿을 수 없는 사연
단단한 껍질 속 열매에 담아
높디높은 나뭇가지에 매단 나무들이 된다
이름이 없어 아무도 알지 못하고
지도에 없어 가닿을 수 없는 산골짜기가 된다
사람이 살다가 죽으면
자기도 미처 알아채지 못한
수많은 아름다움을 숨긴 채
새벽녘마다 성글게 내려와
고단한 들판 덮어줄 흰 안개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