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의 언어를 버리겠다고 한다. 그 말이 잘못은 아니다. 그러나, 버리고 남는 것이 늙어가고 순응하고 안거를 즐기는 순명(順命)의 자연이면, 그것은 오히려 자신이 버리려던 것에 더 가까이 가는 길이기도 하다. 운명적 자연은 억압권력의 토양을 형성해간다. 지배권력은 곧 시간권력이기 때문이다. 시간을 사물화, 영토화하는 과정이 권력행위이기 때문이다. 긍정은 부정의 반대편에 있는 것이 아니라 부정을 껴안고 넘어서는 데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내게는 참 멀다. ('시인의 말'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