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 속에서 ‘갈리아노’라는 이름으로 등장하는 ‘알리아노’는 루카니아 지방에서도 가장 낙후된 곳이다. 가진 것이라고는 오직 ‘햇빛’과 ‘가난’뿐인 이곳에서 저자는 고집스러운 침묵과 체념으로 무장한 농부들과 만나게 된다. 검은 옷을 입고 검은 눈길로 응시하는, 가히 검은 문명이라 일컬을 수 있는 농부들의 세계와 조우하고, 한없는 애정과 존경심에 가까운 외경으로 그 세계의 속살을 어루만지는 것이 책의 중요한 뼈대라 할 수 있다. 국가와 종교가 찾지 않은 땅에 농부들은 신화와 욕망, 비유와 온갖 알레고리들이 꿈틀대는 그들만의 문명을 만들어냈다. 그곳에서 기독교와 샤머니즘, 도덕률과 욕망은 아무런 서걱거림 없이 한데 어우러지고, 과학과 주술은 상충하기보다 서로를 보완한다.
작품의 매 페이지에서 나는 그가 그려내는 남부 이탈리아의 풍경, 작열하는 태양 아래 농부들의 삶이 이루어내는 질박한 아름다움에 감탄하곤 했다. 검은색의 그 처연한 아름다움은 읽는 이가 누구라 하더라도 사뭇 가슴에 스며들며 가장 깊은 곳에 있는 생명의 원체험을 건드리기에 충분한 까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