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여대 정외과와 원광대 보완의학대학원 예술치료학과를 졸업하고 미술치료사로 활동하고 있다. 전진상 영성심리상담소에서 ‘상처받은 내면아이를 돌보는 마음여행’ 워크숍을 비롯한 다양한 미술치료 프로그램을 진행했으며, 개인 및 가족 미술치료를 통해 상처에서 회복되고 평화로워지는 길을 연구하고 안내하는 일을 하고 있다. 현재 저자 로리 라파폴트박사와 함께 포커싱 미술치료사 과정을 공부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만다라 미술치료 워크북』『사이버 미술치료』『유능한 미술치료사 되기』『감정치유: 상처받은 감정을 돌보는 통합적 미술치료』등이 있다.
지난 여름, 캐나다 서부에서 꼬박 이틀을 차로 달려 미국 캘리포니아 주의 포커싱 및 표현예술치료 연구소에 도착했을 때, 저자 로리 라파폴트 박사는 특유의 인자하고 환한 미소로 나를 맞아 주었다.
창문 밖으로 시골의 마을 풍경이 병풍처럼 둘러 쳐진 언덕 위의 연구소는 포커싱 미술치료의 진수를 맛볼 수 있는 곳이다. 밝고 넉넉한 그 곳에서 미국 전역에서 모인 미술치료사, 동작치료사, 상담사, 목회자들과 함께 포커싱 미술치료를 직접 체험했다. 라파폴트 박사는 지속적으로 우리에게 요청했다. “조용히 눈을 감고…내면을 살펴볼까요? 그것이 몸에서 어떻게 느껴지나요?” 이것이 바로 포커싱 작업의 시작이다. 내 몸에 집중하자 가슴 한 가운데 무언가 뭉쳐있는 덩어리 같은 것이 느껴졌다. 뭉글뭉글하면서도 질긴 느낌? 그 안에 무언가가 꿈틀거리고 파닥거리고 있었다. 그것이 나의 첫 감각느낌Felt sense이었다.
라파폴트 박사의 오랜 경험에서 오는 여유와 창의적인 인도에 따라 다른 참가자들과 함께, 혹은 홀로 내 몸의 이것에 집중하고, 포커싱을 통해 올라온 느낌을 다시 미술로 표현하는 작업을 여러 번 반복해 나갔다. 또한 다른 참가자들과 파트너가 되어 이미지를 공유하고, 함께 어울리고 춤을 추었다. 그 사이 뭉글뭉글한 가슴 속에서 꿈틀거리고 파닥이던 것이 형태를 드러냈다. 화가 잔뜩 나 있는 새! 늘 마음 구석에서 느껴지던 저항감과 불만이 새라는 이미지로 모습을 드러낸 순간이었다.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 늘 미소로 덮어 씌어 두었던 그것.
한 파트너와 연구소 밖의 정원에 앉아 내 내면에 포커싱을 한 순간을 잊을 수가 없다. 눈을 감고 내 몸을 그저 응시했다. 내 심장 한 구석에서 그 새가 다시 파득대는 것이 느껴졌다. 라파폴트 박사의 가르침대로 그냥 받아들이고 그 옆에 있어주었다. 어느 순간, 그 새가 품고 있었던 말이 들려 왔다. “내가 화 나 있다는 걸 좀 알아 줘.” 나는 끄덕였다… “그랬구나!”… 내 뺨을 스치던 부드럽고 시원한 바람이 내 몸 속으로 들어왔다. 어느덧 그 새가 날개 짓을 멈추었다. 그 새의 저항이 저만치로 물러 선 순간이었다. 가슴이 편안해졌다. 이제는 조용히 앉아 있는, 그 새의 옆모습이 보였다. 그 새는 홀로 있고, 호수 밖의 먼 하늘을 응시하고 있다. ‘존재함Being'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그리고 아주 깊은 곳에서 뜨거운 눈물이 흘러나왔다. 슬프거나 억울하거나 외로워서 나오는 눈물이 아니었다. 아무런 감정도 개입되지 않았고, 아무 것도 필요치 않았다. 그저 앉아 있는 것이다. “아, 존재한다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그것만으로도 벅차오르는 순간이었다. 그곳이 바로 몸 깊숙이에 자리해 있던 나의 진정한 ‘평화의 공간’이었다.
이 같은 체험을 나에게 안겨 준 라파폴트 박사는 사춘기 시절부터 스스로 내면을 경청하고 그림을 그리는 과정이 마치 “내면의 깊은 곳으로 던져 넣어서 진정한 자신을 구출하는 동아줄처럼 느껴져” 훗날 표현예술치료사가 되었으며, 오랜 세월 열정을 바쳐 일하고 연구한 결과, 포커싱 미술치료라는 새로운 접근법을 구현하게 되었다.
포커싱 미술치료는 미국의 유명한 인간중심 상담 분야의 거두인 유진 젠들린 박사의 포커싱Focusing을 미술치료 임상에 접목시킨 것이다. 젠들린 박사는 칼 로저스와 함께 “무엇이 성공적인 심리치료를 가능하게 하는가?” 연구한 결과, 인지적인 인식을 넘어 자신의 내면적인 경험에 다가간 내담자들만이 상담에서 성공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이를 통해 포커싱을 창시하게 되었다. 포커싱은 미해결된 과제들이 몸의 반응으로 나타나게 되는데, 이러한 반응이 포커싱의 핵심 개념인 감각느낌Felt sense이다. 여기에 집중하게 되면 우리의 문제를 인식하고 해결로 나아갈 수 있다는 보는 심리치료 접근법이다.
이렇게 조용히 내면을 경청하는 포커싱의 핵심 방법은 미술치료와 자연스럽게 연결될 수 있다. 미술치료와 포커싱은 둘 다 내면을 바라보는 자기인식과 성장의 접근법이라는 점에서 공통점이 많다. 지난 30년간 포커싱과 미술치료를 접목해 온 전문가로서, 라파폴트 박사는 두 분야가 결합되면 치료적인 변화와 개인적인 성장에 있어서 상당한 수준의 시너지 효과가 발휘된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이를 ‘포커싱 미술치료Focusing-oriented Art therapy’라고 이름 붙였다. 두 분야가 결합되면 미술치료는 포커싱에서 얻은 심상과 지혜의 원천을 외부의 시각적인 예술로 표현되도록 해주고, 포커싱은 미술치료의 이미지 영역을 깨달음이나 신체적인 감각 경험과 연결시킴으로써 그 차원을 더 확장시켜 줄 것이다. 이처럼 포커싱 미술치료가 여느 미술치료와 다른 점은 감각느낌에 대한 인식과 접근이라고 볼 수 있다. 포커싱 미술치료에서의 미술은 단순히 심리적인 상상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전체적인 몸의 감각느낌과 마음으로부터 나온다.
그럼 점에서 새롭고 창의적인 이 책은 이미 전문가들로부터 “고품격의 실천서”로 “학문적으로 의미심장한 파장을 낳을 것”이라고 정평이 나 있으며, 저자 라파폴트 역시 “미술치료 분야의 새로운 리더로 우뚝 설 것”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 책에서 라파폴트 박사는 포커싱과 미술치료의 역사와 접근법, 젠들린의 ①주변 정리하기 ②감각느낌 통해 문제 선택하기 ③단서/상징 찾기 ④맞춰보기 ⑤물어보기 ⑥받아들이기라는 6단계 포커싱 기법, 그리고 포커싱 심리치료의 원칙에 대해 쉽고 정확하게 설명해 준다. 뿐만 아니라 포커싱 미술치료시 안전한 환경을 조성하는 기본적인 방법, 경청의 중요성, 감각느낌을 미술로 상징화시키는 방법 등이 풍부한 사례와 그림과 함께 소개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포커싱 기법을 적용하여 만든 포커싱 미술치료의 기본적인 3가지 접근법인 ①미술로 주변 정리하기 ②포커싱 심리치료 ③주제유도법 등을 다양한 사례와 방법을 통해 설명하고 있으므로, 이를 간접체험 하다 보면 임상 작업에 어떻게 포커싱 미술치료를 도입할 수 있을지 감이 쉽게 잡힐 것이다.
이러한 혁신적인 접근법을 통해 심각한 정신질환이나 트라우마,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불안, 우울 등을 겪고 있는 개인이나 그룹 등과 작업하고 있는 미술치료사나 포커싱 치료사, 심리학자, 상담자, 사회복지사, 그리고 이 분야에서 훈련을 받고 있거나 공부하는 학생들이 영감을 많이 얻었으면 좋겠다. 나 역시 워크숍에 참여한 이후 지속적으로 포커싱을 하면서 내 안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지혜의 소리에 놀라고 있다. 자신의 행복이나 영성을 강화하기 위해 포커싱 미술치료를 적용해 보고 싶은 사람들 모두에게 이 책이 유용하게 쓰이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