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9년 서울에서 태어났으며 수도여고를 졸업하고 철도간호학교를 졸업하였다. 1975년 간호사로 미국으로 이민하였다. 이때부터 이씨 성에서 남편을 따라 홍씨 성으로 바뀌게 되었다. 타지에서 아이들 3명을 기르며 전문인으로 억척스럽게 살면서 그때그때 생활의 모든 감정들을 시로 표현해 놓았다.
교회에서 만드는 격월간지 <산돌>을 15년 넘게 만들어 오면서 자신의 글들을 발표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다 워싱턴 주 교포 주간지 <미디어 한국>에서 시와 에세이를 1년 연재를 하게 되었고 곧이어 교포 방송 <라디오 한국>에서 2년 동안 일주일에 두 번 작품을 발표하게 되었다. 지금도 워싱턴 주 타코마에서 간호사로 일하면서 <산돌>을 만들고 있으며, 취미는 골프와 동양화이다.
‘옴시렁, 감시렁’은 ‘오면서, 가면서’라는 사투리 고어(古語)입니다. 그렇게 시간은 바람처럼 왔었고 비와 햇빛 등 모든 것을 잔뜩 뿌리고 또 그렇게 무심한 구름처럼 가버렸습니다.
문득 돌아보니 세월은 제 인생의 3분의 2 이상을 달려왔는데 바람처럼 무심히 스쳐 지나가는 시간 속에 저는 어떤 모습으로 여기에 서 있는지요?
중2 때부터 시간의 틈새에서 그때그때의 감정을 시라는 형태로 떨어뜨려 놓았던 꽃들이 있었습니다. 그 꽃들을 펼쳐보며 중얼거렸지요. “남들은 안 알아줘도 이 많은 시들을 어떻게 그냥 쓰레기통에 버려?” 하고 말입니다.
그러다 15년 이상을 만들어 온 격월지 이라는 40쪽의 작은 책자가 저에게 대답을 해왔습니다. 크리스천들이 읽으면 좋을 글들을 모아 교회에서 만든 책자였는데 15년에 걸쳐 90회에 이르기까지 저의 시와 글이 실릴 수밖에 없었고 그 글들을 보고 이곳 교민신문에서 1년에 걸쳐 저의 시와 에세이를 연재해주고 그것이 2년 동안 일주일에 두 번 이곳 교민방송국에서 저의 글을 함께 나누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시와 어울려 에세이를 곁들인 글들이 그렇게 써놓아지게 되었고 그것들을 버리기에는 왠지 더 아까운 생각이 들게 되었습니다.
(중략)
반항의 시절을 거쳐 사랑에 빠지고 결혼하고 아이 낳은 20대 중반까지의 세월인 ‘봄’과 새로운 토양에 뿌리를 내리기에는 너무도 척박한 세월에 몸이 다 까지며 아이들 셋을 길러 다 자라 떠나보냄까지의 세월을 ‘여름’에 묶어 보았고, 아이들이 다 떠나고 이제는 조금은 따뜻한 눈으로 세상을 볼 나이도 되었을 때 쓴 시와 글을 묶어 ‘가을’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동안 써왔던 ‘수필’을 마지막에 묶어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