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세월동안 한결같은 성실함과 친숙한 모습으로 '국민 배우'라고 불리는 한국의 대표적인 배우.
안성기는 아버지가 영화기획과 제작일을 하셨던 탓에 5살때부터 연기를 시작했다. 1957년 <황혼열차>를 통해 영화계에 데뷔한 그는 1959년 <10대의 반항>에 출연하여 대종상의 전신인 문교부 영화상의 문교부 장관상과 샌프란시스코의 영화상 골든 특별상(아역)을 수상하며 배우로서의 가능성을 인정받는다. 그러나 연기와 학교 생활을 병행하는 것이 힘들어 67년 <하얀 까마귀>를 마지막으로 아역배우로서의 활동을 마감한다.
외국어 대학교 베트남어과에 진학한 그는 졸업 후 베트남으로 진출할 의도로 ROTC에 지원하였지만 월남이 패망한 뒤라 전방의 포병장교로 임관하고 군 생활을 마치게 된다. 제대 후 중앙대학교 연극영화과에 진학하였지만 자신의 뜻과 맞지않아 방황하던 그는 아버지의 권유로 1977년 김기영 감독의 <병사와 아가씨들>에 출연하면서 배우로서의 활동을 재개한다.
<제3공작>, <우요일>, <야시> 등의 작품에 조연으로 출연하였지만 그다지 주목을 받지 못하던 안성기는 1980년 이장호 감독의 <바람불어 좋은 날>을 계기로 새로운 발판을 마련한다. 이 영화에서 수준높은 연기를 선보인 그는 끊임없는 노력에 의한 탁월한 연기력으로 한국 영화의 전성기를 이끌어가는 주역으로 급부상한다. <만다라>, <적도의 꽃>, <고래사냥> ,<깊고 푸른 밤>, <겨울 나그네>, <기쁜 우리 젊은 날>, <칠수와 만수> 등 그의 출연작 대부분이 80년대 대표적 흥행영화로 손꼽힐 만큼 안성기는 흥행보증수표로 자리매김한다.
82년에 배창호 감독의 <꼬방동네 사람들>을 찍다가 오소영을 만나 결혼, 두 아들 다빈, 필립을 두었다. 연예인으로는 보기 드물게 사생활에서도 스캔들 한번 없는 모범적인 가장으로서, 그는 겹치기 출연이나 다작은 절대 금물로 여긴다.
90년대에 들어 그는 <남부군>, <베를린 리포트>, <하얀전쟁>, <태백산맥>, <아름다운 시절> 등 작품성있는 영화에서 탁월한 연기력을 선보였을 뿐만 아니라, <투캅스> ,<박봉곤 가출사건>, <인정사정 볼 것 없다> 등의 영화에도 출연하며 연기변신에 도전한다. 진지한 연기 외에 <개그맨>, <투캅스>에서 보여준 코메디 연기 역시 일품이라는 평을 받는다. 2000년대에도 <흑수선>, <무사>, <실미도> 등의 대작영화에 출연하며 꾸준한 활동을 보여주고 있는 안성기는 스크린 쿼터 사수운동 등 한국 영화의 발전을 위해서도 활발한 활동을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