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 영화 감독의 대명사. 무려 5번이나 아카데미상을 수상한 그는 예술적 성취와 대중적 인기를 동시에 얻은 드문 감독 중의 한 사람이기도 하다.
그는 정식으로 학교에서 영화 교육은 받아본 적이 없으며, 21살이 되는 41년부터 영화와 인연을 맺게 되었는데, 데뷔는 개그맨으로 시작하였다. 그때부터 코미디 영화의 시나리오에 참가했고 틈틈히 라디오 드라마를 쓰기도 했다.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의 선두주자 로셀리니를 만나서 그의 조감독으로 일을 하게 된 그는, 자신의 유랑 생활을 투영한 <청춘군상>(53)으로 감독 데뷔, 수많은 명작들을 발표하며 이탈리아 영화와 펠리니는 동의어가 된다. 그에게 세계적인 명성을 안겨준 그의 대표작 <길>에서 줄리에뜨 마시나가 연기한 주인공 젤소미나는 아직도 뜨거운 연민을 일으키는 인물의 대명사로 기억되고 있다. <8과 1/2>(1963), <영혼의 줄리에타>(1964) 등을 통해 모더니즘의 신기원을 연 펠레니는 1960년대의 대표적인 시네아스트로 명성을 쌓았다.
펠리니 감독을 한 마디로 어떤 유형의 감독이라고 말하기는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만큼 펠리니의 영화들은 다양한 스펙트럼의 흔적들을 남겼고, 몇 차례에 걸쳐 패러다임의 전환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펠리니는 분명 네오리얼리즘의 계보 속에서 작업을 시작했으면서도 그 길에 오래 머무르지 않았으며, 끊임없이 새로운 영상언어의 길을 탐색했다. 선배들의 작품 세계와는 완전히 다른 영화들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그는 전후 이탈리아 감독들 가운데 가장 논쟁적인 감독이 되었다. 펠리니는 초기의 네오리얼리즘의 영향에서 차츰 벗어나 보다 자전적이고 상상과 현실을 넘나드는 환상적인 이야기들을 영화에 끌어들이며 매력적인 신화의 세계를 일구어냈다. 그의 기태적이고 화려한 내면을 탐구한 자전적인 영화들은 네오리얼리즘과 결별하고 “펠리니적인”이라는 수식어를 붙게 하는 것이기도 했다. 짙은 애수와 함축을 담은 펠리니의 제작법은 펠리니 애스크라는 이름으로 영화의 고전 속에 남아있다.
그는 90년까지 24편의 영화를 남기고 93년 10월 31일 심장발작으로 7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93년 아카데미상에서 찰리 채플린, 오손 웰스, 알프레드 히치콕에 이어 4번째로 아카데미 명예상을 수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