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 같은 책이 되었으면…
가끔 생각나는 개가 있습니다. 몇 년 전 회사를 다닐 때였는 데, 휴가를 내고 수도원에서 열흘 정도 머문 적이 있었습니다.
조용한 곳에서 잘 먹고 잘 쉬며 산책을 하곤 했어요.
그날도 점심을 잘 먹고 따뜻한 해를 받으러 산책을 나섰는데 수도원에서 키우는 개가 뒷마당에서 달려왔습니다. 그때까지는 그곳에 개가 있는지 몰랐어요. 아주 커다랗고 털이 북실북 실한 개였어요. 그 개와 한참 동안 숲길을 걸었어요. 녀석은 걸음이 느린 저보다 앞서갔고 가끔 돌아보며 기다려 주었습니다.
높은 곳에 올라 산기슭에 있는 마을도 보고 바람 냄새도 맡았 지요. 돌아올 때는 제가 먼저 발걸음을 돌렸는데 녀석은 산책을 더할 듯이 앞으로 나아갔어요. 저는 개가 안 따라오면 어쩌나 마음을 졸이면서도 돌아오겠지 하는 믿음으로 숲을 내려갔습니다. 그렇게 가다 보니 녀석은 또 언제 그랬냐는 듯이 뒤따 라왔어요. 어디만큼 왔을까, 서로 찾으며 걸음 속도를 적당히 맞추며 수도원까지 돌아왔지요. 그 산책을 오랫동안 기억하고이 책을 쓰면서는 자주 꺼내 보았어요. 따뜻한 콧바람, 엉켜서잘 쓸리지 않던 털, 함께 보던 풍경, 말없이 함께한 시간을요.
이 책을 읽는 친구들에게 이 책이 그런 산책과 같았으면 좋겠습니다. 책이 쉬어갈 수 있는 의자가 되고, 땀을 식히는 바람이 되고, 잠깐의 눈인사를 건네는 동무가 되면 좋겠습니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우리는 함께 걸어가고 있지 않을까요.
서로 어디쯤 왔을까 찾으면서요.
함께 만들어 준 편집자님, 오랫동안 글쓰기를 하지 못하던 저에게 용기를 북돋아 준 봄볕 팀에게 감사드려요. 그림을 그려 준 모예진 작가님에게도 고맙습니다.
따뜻한 유년을 지켜 준 부모님과 기꺼이 별명을 내어 준 맹물, 콩짱, 탱이에게 고마움을 전합니다.
2022년 겨울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