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상 마르코 극장의 바이올리니스트였던 지오반니 바티스타 비발디의 장남으로 출생하였고, 15세때 삭발하고 하급성직자가 된 그는 25세때 서품을 받아 사제가 되었습니다.
베네치아 오스페달로 델라 피에타 여자양육원의 바이올린 교사로 취임하며 많은 곡을 작곡, 지휘하였는데 그의 음악이 대체로 아름답기는 하나 다소 나약하다는 평을 받기도 하는 이유는 주로 여자아이들을 위해 쓴 곡이 많기 때문이라는 설도 있습니다.
비발디는 바이올린의 명수로서 전 유럽에 이름을 날렸으며, 사실 작곡가로서보다 바이올리니스트로서 더욱 유명하였지만, 작곡가로서 더 많이 알려지길 원했습니다.
비발디는 워낙 작품을 많이 썼으므로 사실 비슷비슷하게 들리는 곡들이 여러 곡 있기도 하나, 바로크 음악의 대들보라 할 독일의 요한 세바스티안 바하는 7세 연상인 이탈리아의 작곡가 비발디를 몹시 존경해 그의 현악 협주곡 중 몇 곡을 건반 악기용으로 편곡하기까지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