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넬리 블라이(Nelli Bly)1864~1922. 엘리자베스 코크레인Elizabeth Cochrane이 본명이며 미국 펜실베이니아에서 태어났다. 그녀가 아주 어릴 때 판사였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 어려운 환경에서 성장했다. 스무 살을 갓 넘긴 1885년, 피츠버그 <디스패치>에 여성에게 어울리는 공간은 가정뿐이라는 식의 기사가 실린 것을 보고 항의 편지를 보낸다. 여성을 가정에 가두는 것은 국력의 낭비임을 깨우치는 글이었다. 이를 본 편집장이, 자기네 기사에 대한 비판임에도 그 글에 담긴 명민함과 재능을 알아보고 기자로서 글을 써 보라고 제안한다. 글쓴이가 여자인 줄 모르는 상태에서 한 제안이었기 때문에 그녀의 능력을 시험하는 과정이 있었다. 하지만 결국 그녀는 기자로 채용됐으며, 작곡가 포스터의 곡에서 따온 넬리 블라이라는 필명까지 얻었다. 1887년에는 언론인의 대명사 퓰리처가 운영하던 뉴욕 '월드'로 자리를 옮겼다. 취재를 위해서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 열혈 기자가 된 넬리 블라이는, 환자를 학대하는 정신병원을 고발하는 기사를 쓰기 위해 환자로 위장하고 열흘간 입원하기까지 했다. 1889년에는 프랑스 소설가 쥘 베른의 《80일간의 세계 일주》 속 주인공보다 빠른 72일 만에 세계 일주에 성공해서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퓰리처가 그녀의 여행에 걸리는 시간을 가장 가깝게 맞히면 유럽 여행의 기회를 주겠다며 독자의 관심을 이끌어 미국 전역에서 100만 통이 넘는 응모 편지가 쏟아졌다. 또 프랑스에서는 출간된 지 몇 년이 지나 판매가 시들하던 쥘 베른의 소설이 넬리 블라이에 대한 관심 때문에 다시 폭발적으로 팔렸다. 서른 살에 70대의 백만장자와 결혼해 입방아에 오르고 한때 사업가로서 활동하다가 취재 현장으로 돌아갔다. 그녀가 가장 빛난 순간은, 인권을 유린하는 교도소?노동력을 착취하는 공장?뇌물을 받은 유력 정치인 등을 고발해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데 이바지하는 기사를 쓸 때였다. 직설적이면서도 유머가 있는 문장으로 독자에게 사랑받고 뉴욕 <월드>의 전성기에 간판 기자로서 자리 잡은 그녀는, 남성만의 세계이던 언론계에 확실한 족적을 남기고 후배 여성들에게 희망이 되었다.
![]() ![]() 대표작
모두보기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