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쓰고자 한 계기는 다음의 세 가지이다. 우선은 최근의 소설을 열심히 따라 읽자는 생각에서였다. 그 동안 나는 1960~80년대 작가들의 작품 연구에 집중했다. 그 시대의 빼어난 작품들에 푹 빠져 지내던 시간은 힘들고도 행복했다. 그런 한편으로 2000년대 이후의 소설 흐름에 조금 뒤처지고 있지 않나 하는 찜찜함도 없지 않았다. 문학지와 젊은 작가들의 신간을 틈틈이 찾아 읽기는 했으나, 뭔가 미진한 마음이 다 지워지지는 않았다. 그 아쉬움은 종종 불안감으로 엄습하기도 해 괴로웠다. 불편한 감정에 더 이상 억눌려 있기가 어려웠던 나는, 부족한 대로나마 동시대 소설들을 정독하며 ‘일상적 사물과 시공간’을 살피기 시작했다.
다음으로는 학생들과 함께 소설을 공부하며 이런 유의 책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사실 요즘 대학생들은 소설을 너무 읽지 않는다. 나름으로 열심히 공부해 대학에 들어오기는 했으나, 교과서에 수록된 명작들도 잊기 일쑤이고 소설 그 자체에 무관심한 학생들도 적지 않다. 그런 현상이 취업 제일주의에 목을 매는 세태의 반영이라는 것을 모르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학생들과 함께 수업을 하는 선생으로서, 그들에게 조금은 쉬운 소설 접근법을 제공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마지막으로는 음악과 연관이 있는 책을 갖고 싶다는 욕망 때문이었다. 좋아하는 음악에 관한 글을 쓰고 싶었고 실제 몇 편 작업을 해보기는 했다. 가벼운 개인 감상평을 쓸 수는 있었다. 하지만 선정한 곡이나 음반에 대한 깊이 있는 지식의 부족으로 결과물은 늘 초라했다. 차라리 말을 말고, 이 책에서 다룬 글감과 연관된 음반 사진을 올려놓는 것이 낫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물론 여기에 수록된 엘피판 재킷이 내가 애청하는 음악의 그것이 아닌 것들도 있기는 하다. 그럼에도 다행히 저마다의 음반 사진은, 나의 얕은 수준의 음악적 글보다 훨씬 풍성한 소리를 울려주고 있다.
이 책의 구성 체계는 대략 이렇다. 각 챕터의 맨 앞 사진은 글의 테마에 어울리는 음반을 찍은 것이다. 언뜻 보면 글의 주제에 딱 들어맞지 않는 것도 몇 개 있으나, 과문의 나로서는 최선을 다했다고 말하고 싶다. 그 다음에는 테마에 맞는 미니픽션을 배치했다. 그 글들을 쓰면서 미니픽션의 미학을 구현하기가 만만치 않다는 사실을 절감했다. “Simple is the best!”의 힘도 새삼 깨닫게 되었다. 마지막에는 동일 소재를 소설화한 작품들을 비교·대조했다. 같은 글감에 대한 이 시대 젊은 작가들의 접근법과 소설적 형상화 방식을 살피며 많은 공부를 할 수 있었다. 분석의 내용이 학술 논문처럼 정치하지는 않지만, 책의 성격상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아쉬운 마음도 없지 않으나, 이 책이 학생들과 일반 대중들에게 최근 소설로의 본격적 탐사를 위한 진입로 역할은 할 것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