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필자의 강릉단오제에 대한 관심은 일종의 의무감에서 시작된 듯하다. 이 지방에서 학교를 다녔고, 뒤늦게 이곳 대학에 취직하여 생활하게 되면서 생긴 의무감이었다. 그리고 이런 의무감에 앞서 강릉단오제에 대한 내 어린 시절의 정겨운 추억도 그 계기가 된 듯하다. 단오장의 볼거리 먹거리에서 오는 즐거움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읍내에 있는 큰집에 내 어머니를 비롯해 대소가들이 모여 하루 이틀을 지내면서 단오장을 구경 다니시던 모습에서 오는 정겨움은 지금도 아련하게 남아 있다.
어린 시절에 보아 온 단오장의 기억 속에 한 단상이 늘 맴돌고 있었다. 그것은 많은 사람들이 단오장에 운집하는데 유학을 공부하셨던 할아버지는 왜 단오장에 나가지 않으시는가 하는 의문이었다. 그리고 이 아련한 단상 위에 또 하나 겹쳐지는 의문이 있었다. 그것은 이 지방의 역사적 인물로 앞세워지는 많은 학자들은 자신들의 고향에서 연행된 강릉단오제에 대한 기록을 남기지 않았는가 하는 점이었다. 강릉단오제 자료를 검색하면서 불식되지 않는 의문이었다.
아마도 여기에는 저간의 사정이 있을 듯도 보여 지는데, 그리고 저간의 사정이라는 것이 어쩌면 강릉단오제 연구의 핵심 과제가 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이제 어련 풋 하게나마 짐작은 될 것도 같은데, 이 해묵은 의문은 내게서 여전히 과제로 남아 있다. 그리고 그동안의 해묵은 의문은 단오제의 향유층이라는 보다 구체적인 과제로 내게 돌아 올 것도 같다.
이번에는 강릉지방 사회변화와 강릉단오제의 변화를 연동시켜 이해하려는데 주안점을 두었다. 강릉단오제는 지방 공동체의 정체성을 담아내는 축제이고, 축제의 중심에는 성황제가 있다. 이러한 보편적 구조에서 지역성으로 성황제의 신체인식에 주목하였다. 이러한 신체인식은 지방의 사회안정과 발전을 모색하려는 주도세력의 성향과 무관할 수 없다고 보았다. 이런 시각에서 주도세력의 성향과 그에 상응하는 사회변화가 강릉단오제에 어떻게 투영되는가를 살피고자 하였다.
이를 통해 중앙의 정치적 동향을 예의 주시하면서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 지방 주도세력의 성향을 살필 수 있었고, 한편으로 지방사회의 풍속과 관행을 앞세워 서민들의 포용하면서 자신들의 사회적 입지를 유지 강화하려는 중간계층의 성향도 살필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성향은 사회 변혁기에 보다 선명하게 나타나고 있으며, 이로부터 강릉단오제가 장기 지속적일 수 있었던 동력을 파악할 수도 있었다. 전승제의가 갖는 복고적·보수적 성향에도 불구하고 격변기 마다 생성되는 새로운 변화를 살피면서 그 발전적·미래지향적 의미도 새겨 볼 수 있었다. 다만 이러한 작업 과정에서 향유층의 성향과 동향을 홀시한 듯한 걱정은 여전히 남아 있다.
이번 작업에서 미타계 자료를 이용할 수 있었던 것은 행운이었다. 자료의 지평을 넓혔다는 의미도 있지만, 이 자료를 통해 이 지방의 양반세력과 호장을 비롯한 향리세력의 동향과 성향을 살필 수 있었던 점은 매우 다행스러웠다고 생각한다. 이 자료는 강릉오죽헌시립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이 자료를 소개해 준 당시 정항교 관장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전한다.
이 책이 강릉단오제를 이해하는데 조그마한 도움이라도 되었으면 한다. 여전히 강릉단오제의 중심제의가 산신제인지? 성황제인지? 혼동이 야기되곤 한다. 이 점은 강릉단오제의 정체성과 직결되는 사안이기에 혼동이 불식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이번 출판을 쾌히 응낙해 주신 신구대학교 이숭겸 총장님과 신구문화사 임미영 사장님께 감사를 드린다. 젊은 날 청진동 시절이 내게는 너무도 소중하였다는 말로 거듭 인사를 드린다. 그리고 최승복 편집부장을 비롯한 편집부 관계자 여러분께도 이 자리를 빌려 감사드린다. 집사람에게도 고마운 마음 전한다.
2016년 11월
지변동 연구실에서 이규대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