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풍양豐壤이고 자는 치회稚晦, 호는 귀록歸鹿이다.
1713년(숙종 39) 진사가 되었으며 1719년(숙종 45) 증광 문과에 병과 7위로 급제하였다. 홍문관 교리로 재임 중에 이인좌李麟佐의 난이 발생하자 오명항吳命恒의 종사관으로 종군하여 공을 세웠으며 풍원군豊原君에 책봉되었다. 이후 대사헌, 경상감사 등을 역임하고 영의정에 올랐다. 탕평蕩平을 주장하였고 균역법均役法의 재정을 총괄하였다. 만년에 양주 해등촌海等村(현 서울시 도봉구 방학동)에 거처하며 『풍수암속만록風樹庵續漫錄』을 지었다. 저서에 『귀록집歸鹿集』 20권 20책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