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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르지 스콜리모프스키는 철의 장막 시절 명성이 자자했던 동구권의 톱 클래스 영화감독이었다. 로만 폴란스키와 함께 안제이 바이다 이후 세대를 대표했던 스콜리몹스키는 불행히도 로만 폴란스키처럼 서유럽의 영화시장에 적응하지 못했다. <투항 Hands Up>(1967)을 마지막으로 스콜리모프스키는 고국인 폴란드에서 영화를 찍을 수 없었고 서유럽의 영화자본을 구하러 다니면서 힘들게 영화를 찍었다. 흥행이 부진한 70년대 초반의 연출작들 때문에 제작비를 구하기 어려워지자 제작들에게 전화를 걸면 스콜리모프스키의 첫 마디는 항상 똑같았다. "난 스콜리몹스키에요. 혹시 이름을 들어보셨나요?" 영미권 영화계에서 그는 미지의 감독이었다. 그래도 그는 사무실에 '한 남자의 일생을 좌우할만한 최고의 애인은 영화다'라는 오손 웰즈의 경구를 커다랗게 써붙여 놓고 배짱좋게 버텼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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